“도망가다 잡히면 살 묻어나는 줄로 후려갈겨…왜놈들 참 독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일 13시 27분


군함도 기록되지 않은 기억 / 이혜민 지음 / 219쪽·1만5000원·선인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해를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대법원이 최근 확정했다. 이에 따라 법원에 계류 중인 미쓰비시 중공업 등 다른 일본 기업 상대 소송도 같은 결정이 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이 다루는 ‘군함도’(하시마)가 바로 일제강점기 ‘미쓰비시 광업’이 운영했던 사업장 가운데 악명이 높았던 곳이다.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로 불리지만 일본인 광부들은 ‘지옥 섬’이라고 불렀다. 이 섬에서 매일같이 얻어맞고 죽어나가면서도 강제로 일해야 했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조명한 책이다. 군함도 생환 당사자와 그 가족의 생생한 인터뷰를 담았다.

“바다의 섬. 죽음의 섬.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주 지긋지긋혀. 철장 없는 감옥살이를 지나다 보니까…나는 ‘주땡’이라고 탄 캐는 자리를 메우는 거 했어요.…하나는 주땡을 하다가 맞아서 죽어버리고. 두 명 죽는 걸 봤어.…(도망가면) 되려 붙잡혀 그 매를 다 맞는데 그냥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고름이 질질 나고. 배고 어디고 등짝이고 어디고 그 와이어 줄로 그냥 살 묻어나는 고무줄로 후려갈기는데. 왜놈들 참 독해요.”

1926년 태어나 1944년 11월 군함도로 끌려간 생환자 최장섭 씨가 지난해 6월 저자에게 털어놓은 증언이다. 책은 이밖에 군함도에 있던 ‘위안부’의 흔적도 쫓는다.

근현대사 문제를 꾸준히 취재해 온 기자인 저자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가 2016년 6월 활동을 종료한 뒤 정부의 관련 피해 조사가 사실상 중단된 것이나 매한가지인 게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영화 ‘군함도’ 개봉을 비롯해 일제 강점기 비극을 소재로 한 소설, 만화, 뮤지컬 등 문화콘텐츠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로 남으려면 기록으로 보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