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배럴바 ‘구스 아일랜드’에서 고객들이 맥주를 즐기고 있다. 맥주를 숙성시키는 데 사용한 빈 오크통을 주변에 장식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은은한 조명에 분위기 있는 재즈 음악이 흘렀다. 사방에 위스키와 와인을 보관했던 배럴(Barrel·오크통)들이 전시돼 있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배럴바 ‘구스아일랜드(Goose Island)’의 풍경이다.
회사원 박정민 씨(29·여)는 “항상 마시는 그것”을 주문했다. 잠시 후 바텐더가 건넨 진한 액체가 담긴 작은 글라스의 향기를 맡은 뒤 천천히 맛을 음미했다. ‘버번 카운티 스타우트’라는 이색 맥주였다. 버번위스키를 숙성한 배럴에 맥주를 넣어 발효시킨 맥주였다. 박 씨는 “시원하게 들이켜는 일반 맥주와 달리 위스키처럼 조금씩 마시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개인사업가 조영채 씨(50)는 ‘소피’를 추천했다. 소피는 와인 배럴에 맥주와 오렌지 껍질을 넣어 숙성시킨 ‘와인 배럴 에이징(숙성)’으로 제조해 독특한 맛과 향을 갖고 있다. 조 씨는 “맥주의 쌉싸름한 맛과 오렌지의 새콤함, 와인의 잔향이 어우러진 느낌”이라고 했다. 버번 스타우트가 위스키의 묵직함이 강하다면 소피는 향긋한 와인의 특징을 덧입힌 맥주라는 것이다.
맥주가 진화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존 맥주는 하얀 거품에 시원하고 쌉쌀한 노란 액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맥주에 위스키, 와인을 접목하고, 기존의 라거(Lager·통 밑에서 발효), 에일(Ale·통 위에서 발효)의 도수를 높이는 등 맥주 컬래버레이션(협업)까지 다양화되고 있다.
버번 스타우트는 거품이 거의 없고 검고 진한 색깔에 묵직한 맛을 갖고 있다. 평균 8년간 위스키를 품었던 버번 배럴에 맥주를 담아 약 1년간 숙성시켰다. 오크와 초콜릿, 바닐라, 캐러멜 등이 합쳐진 강한 향이 특징이다. 알코올 도수가 숙성 기간에 따라 13∼15%로 보통 맥주(약 4∼5%)보다 2배 이상 높다. 약간만 마셔도 양주를 마신 듯한 느낌이 든다. 소량만 만드는 관계로 가격은 750mL 한 병에 11만∼15만 원(한 잔에 2만 원)으로 비싼 편이다.
‘소피’는 구스아일랜드 창업자인 미국 존 홀의 손녀 이름을 딴 빈티지 에일 맥주다. 맥주와 와인에 톡 쏘는 탄산감을 더해 샴페인을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 병에 3만 원(한 잔 1만6000원).
라거 맥주가 노란색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제품도 나왔다. 프리미엄 앰버(amber) 라거 ‘레드락’은 진한 호박색만큼 맛이 강하다. 앰버 라거는 영국산 크리스털 몰트로 추가 로스팅해 진한 색감과 맛을 살렸다. 보통 라거는 맥즙을 끓이는 보일링 과정에만 홉을 넣지만 앰버 라거는 낮은 온도에서 홉을 한 번 더 넣어 깊고 진한 맛을 낸다.
‘짤맥 골든에일’은 이모티콘과 맥주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맥주다. 국내 프리미엄 로컬 크래프트 브루어리 ‘핸드앤몰트’가 카카오톡 이모티콘 브랜드 ‘오늘의 짤’과 함께 선보인 제품이다. 밝은 노란빛과 열대과일 향이 특징이다. 국내 최초로 홉을 농축한 증류식 홉 오일을 양조에 사용해 맥주 특유의 쓴맛 대신 깔끔하고 부드러운 끝 맛을 살렸다.
위스키와 와인이 가미된 맥주는 아직은 일부 마니아층이 선호하는 편이다. 보통 치맥(치킨+맥주)을 즐기는 일반인에겐 조금 낯설 수 있다. “맥주의 맛을 다양화했다”는 긍정론과 “가격만 높인 상술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오비맥주 정은선 과장은 “위스키, 와인 등을 가미한 맥주가 아직 대중적이진 않지만 맥주 메뉴의 다양화는 더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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