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칸토 오페라(18, 19세기를 거쳐 확립된 이탈리아 오페라의 양식)의 진수 ‘루치아 디 람메르무어’가 23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스코틀랜드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불리는 ‘루치아…’는 주인공 역을 소화해 낼 배우의 캐스팅이 쉽지 않아 국내에서는 잘 공연되지 않았던 작품이다. 이번 공연에는 유럽을 대표하는 레지에로 소프라노(가볍고 발랄한 목소리로 아주 높은 음역을 노래하는 소프라노) 질다 피우메와 나탈리아 로만이 발탁됐다.
‘루치아…’는 17세기 초 스코틀랜드 래머무어(람메르무어) 지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국 월터 스콧의 소설 ‘래머무어가의 신부’가 원작으로, ‘보바리 부인’, ‘안나 카레니나’와 함께 당대 최고 로맨틱 비극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기울어 가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정략결혼을 해야 하는 루치아는 대대로 원수인 집안의 아들 에드가르도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가족의 강요에 못 이겨 다른 남자와 결혼 서약을 하게 된다. 에드가르도는 절망에 빠져 떠나버리고, 루치아는 결혼식 날 신랑을 죽인 후 피투성이가 된 채 하객들이 모여 있는 피로연장에 나타난다.
3막에서 루치아가 탈진해 숨을 거두기 전 부르는 아리아는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다. 20여 분간 지속되는 이 솔로 무대는 목소리를 악기처럼 다뤄야 하는 극한의 기교와 고음이 뒤섞여 있다. 배우는 이를 해내는 동시에 루치아의 격렬한 절망까지 연기해야 한다. 이탈리아의 파르마 왕립극장과 모데나 루치아노 파바로티 시립극장을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오페라 ‘루치아…’의 주역을 맡아 각광받고 있는 소프라노 질다 피우메와 나폴리 산카를로 국립극장 등 전 세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나탈리아 로만이 한국 관객에게 처연한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루치아가 숨을 거뒀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의 연인 에드가르도 역시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두 명의 여성 소프라노 외에도 국제 오페라 어워즈 베이스상을 수상한 카를로 콜롬바라, 25년 정상의 바리톤 우주호 등 유명 성악가들이 출연한다. 이탈리아의 천재 무대미술가 자코모 안드리코와 비주얼 아티스트 레안드로 숨모가 디자인한 독특하고 웅장한 무대와 영상도 기대를 모은다.
가부장적 시대를 견뎌온 한 여성이 ‘광기’로나마 저항해야 했던 처절한 상황을 표현한 작품으로, 현대 관객들도 공감하며 즐길 수 있다. 3만∼25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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