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 무렵 독일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경험한 저자. 수십 년 세월이 흘러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난 한 학계 인사가 ‘나치 가해자와는 공감하고 싶지 않으며, 유대인 피해자와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역사적 사건 속 피해자들의 증언을 포함한 모든 기록과 사료, 문학을 어떻게 소비하고 이해할지에 대한 무겁고도 솔직한 이 말은, 가해자일 수도 피해자일 수도 없는 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만하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독일 문학 연구가인 저자는 과거를 증언하는 동시에 현재와 연결 지점을 놓치지 않으며, 독자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끊임없이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내가 가스실에서 살해될 위협에서 벗어나 독자 여러분과 함께 전후세계의 해피엔드로 향해 가는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나와 함께 기뻐하는 것을 내가 어찌 막을 수 있을까. … 내가 어떻게 해야 여러분이 안도의 숨을 내쉬지 않을까?”
책은 저자가 강제수용소에 수감되기 전부터 오스트리아 사회에 존재하던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긴장, 그리고 수용소에서 탈출한 뒤 미국에 정착하기까지를 들려준다. 점점 그 수가 줄어가는 유대인학교 교사는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하는 짓이 꼭 유대인학교 애들 같다’며 아이러니한 욕을 한다. 저자와 어머니는 탈출 뒤에도 여전히 가난했으며 우울증을 앓아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홀로코스트’라는 강렬한 사건으로 역사를 기억하지만, 저자는 비극이 그 주변부의 다양한 결로 읽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 책에선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두드러진다. 유대인 사회에선 남성만이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를 올릴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저자는 이중 차별 구조 속에 놓여 있었다. 결혼 뒤에도 참전 용사였던 미국인 남편으로부터 공감을 얻기 힘들었다. 같은 사건을 겪었지만 저자의 말처럼 “전쟁은 남자들만의 것”이었다.
또한 그는 나치의 악행을 기억하는 현대 사회의 방식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많은 이들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며 과거 범죄의 일회성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강제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의 일부가 여러 곳에서 어제도 오늘도 반복”됐으며 “강제수용소 자체가 예전에 있었던 것의 모사품이었다”. 인류는 과거의 범죄를 자기 자신이 느끼는 ‘불편한 마음에 대한 위로’ 혹은 ‘감상적인 기분’으로 환기해선 안 된다.
“여러분은 나와 동일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그런 동일시를 하지 않으면 더 좋겠다. … 그러나 적어도 자극을 받기 바란다”는 저자의 말처럼, 과거의 끔찍한 사건들은 그저 박제하고 적당히 보상하며 마무리할 일이 아니다. 국가 폭력 피해자의 경험과 기억, 사후 영향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야 하는 세계인들은 그의 말을 새겨들어 볼 만하다.
“여러분이 자와 컴퍼스로 미리 깔끔하게 그어놓은 어떤 틀 안에서만 여러분과 상관이 있다고, 이미 시체 더미 사진들을 견뎌냈고 공동의 책임과 동정심에 관한 여러분의 책무를 다했노라고 덮어 놓고 말하지 말라. 난 여러분이 논쟁적인 태도로 대결에 나서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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