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약속이나 한 듯 전국 공연장 무대에 일제히 오르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교향곡으로는 베토벤 9번 ‘합창’, 교회음악으로는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가 대표적이고,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오페라로는 크리스마스이브가 첫 두 막의 배경이 되는 푸치니 ‘라보엠’이 있죠. 올해도 국립오페라단을 비롯한 여러 단체가 전국에서 이 아름다운 서정적 오페라를 공연합니다.
그런데 이 오페라에는 남자 주인공인 로돌포 역 테너를 유독 힘들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1막에서 로돌포가 자기를 소개하는 아리아 ‘그대의 찬 손’ 절정 부분에서 뽑아내는 높은 C(도)음입니다. 이렇게 높은 소리는 19세기 중반까지 오페라에 종종 등장했고 베르디도 ‘일 트로바토레’에 나오는 분노의 아리아 ‘타오르는 불꽃을 보라’에 집어넣었죠. 그러나 푸치니의 시대인 19세기 후반에는 많이 쓰이지 않았습니다.
푸치니도 테너에게 이렇게 높은 음을 요구한 것은 딱 한 곳, 이 곡뿐입니다. 훈련이 잘 된 테너도 컨디션에 따라 목을 혹사하게 되거나 삐끗할 수 있기 때문에, 전 세계 일류 오페라 극장에서도 이 부분만은 반주까지 전체를 반음 내려 연주하는 일이 잦습니다.
그렇다면 이 ‘높은 C’는 테너가 오페라에서 노래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소리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1830년대 프랑스 오페라인 알레비의 ‘라 쥐브’나 아당의 ‘롱쥐모의 우체부’에는 한 음 더 높은 ‘높은 D’가 등장합니다. 당시의 음높이 표준이 오늘날보다 낮았다는 점을 고려해도 테너의 진을 빼는 일이었음은 틀림없습니다.
한편 같은 시대 이탈리아인 벨리니(사진)의 오페라 ‘청교도’에는 한 음 반 더 높은 ‘높은 F’까지 나옵니다. 가성(팔세토)을 쓰지 않고 이 소리를 ‘질러’내는 일은 불가능해서, 벨리니 시대에 이 음을 어떻게 연주했는지는 수수께끼입니다. 오늘날 많은 테너가 높은 F 대신 두 음 낮은 ‘높은 D플랫’으로 소화하고 있지만 이 음마저도 ‘높은 C’보다 반음이나 높습니다.
높은 음의 ‘횟수’로 테너를 고생시키는 노래도 있습니다. 도니체티의 ‘연대의 아가씨’에 나오는 ‘아, 친구들이여’입니다. 이 노래에는 높은 C가 아홉 차례나 등장합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