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걸]“내 일에 남다른 가치 부여해 신나게 몰입한 게 초고속 승진 비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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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맥주 마케팅 코어브랜드 그룹 전무 남은자



“상무 명함을 받고 미처 다 쓰기도 전에 전무가 됐어요. 지난 월드컵 때 부장이었는데, 올해 월드컵 때는 전무였을 정도로 해마다 승진을 했죠.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각 자리에 맞는 리더십을 발휘하는데 어려움도 컸습니다.”

남은자 전무(45)는 삼성전자, 필립스전자 등 브랜드 마케터를 거쳐 2007년 오비맥주에 입사했다. 2014년 9월 카스 브랜드 마케팅 부장으로 이동한 후 2015년 2월에 이사, 2016년 10월에 상무, 그리고 올해 7월 전무에 오르며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오비맥주 86년 역사상 최초로 내부에서 단계별로 승진한 여성 임원이자, 그룹 내 아시아 지역 마케팅 부문 최고위직 여성이기도 하다.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기회 잡아

남 전무는 “기회는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사람이 잡기 마련”이라며 “위험을 감수한 주도적 선택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4년 전, 회사는 주력 브랜드 카스의 매출이 감소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신제품 개발 팀장이던 남 전무는 다들 주저하던 카스 브랜드 마케팅 총괄 업무를 자원했다. 고민 끝에 띄운 승부수였다. 그는, 곧 브랜드 포지셔닝에서부터 제품 디자인, 홍보, 판매 부문까지 전반적인 마케팅 전략을 재구성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남 전무는 “당시 내가 카스인지, 카스가 나인지 모를 정도로 몰입해서 일했다. 힘든 줄도 몰랐다”고 떠올렸다. 이후 카스는 브랜드 선호도, 시장 점유율, 판매량에서 최고 기록을 해마다 경신해나갔다. 승진은 그에 따른 보상이자 결과였다.

“전무가 된 후 ‘아니, 여자가 어떻게 주류업계의 전무가 되었나?’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웃음). ‘술’ 하면 아직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죠. 우리 사회 여러 지표들을 보면 여전히 여성에게 직장 내 유리천장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성 차별이나 편견 없이 능력에 따라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보상해줍니다. 제가 그 사례가 되었으니, 후배들에게 좋은 롤 모델이 돼야죠.”

남 전무는 현재 페이스북 최고 운영 책임자(COO)로 2012년 페이스북의 최초 여성 임원이 된 셰릴 샌드버그를 좋아한다. 샌드버그는 여성 리더십에 관한 책 ‘린인(Lean In)’을 펴냈고 같은 이름의 여성 재단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그는 여성이 리더가 되기 위해서 ‘뒤로 물러서지(Lean Back)’ 말고 ‘적극적으로 달려들라(Lean In)’고 조언한다.

“최근 샌드버그의 저서를 다시 읽으면서 예전에 단지 부럽게만 보였던 그의 성공이 얼마나 많은 도전과 역경의 극복으로 이룬 것인지 새삼 공감했습니다.”

남 전무는 “나 역시 늘 ‘린인’의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쓴다”고 말한다.


깊은 주제부터 사소한 이야기까지 직원들과 대화에 집중

“임원이 되고도 제가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했어요. ‘내가 하던 일이니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죠. 과도한 열정과 급한 마음에 무리수를 두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실무자와 관리자는 ‘사용하는 근육’이 달라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내가 일하는 것’과 ‘일이 되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르더군요.”

남 전무는 ‘360도 다면평가’를 받아 자신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허심탄회하게 문제점을 물어보기도 했다.

“예전에 저는 전형적인 잔 다르크 스타일이었어요. 가장 먼저 출근, 가장 늦게 퇴근하며 일에 매달리면서 ‘나를 따르라!’고 요구했죠. 그게 통했고요.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그는 “리더십 역량은 시대가 원하는 가치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잔 다르크나 독불장군은 통하지 않는다. 이제는 ‘지지’와 ‘동기부여’가 키워드” 라고 하면서 “어떻게 하면 직원들과 잘 어울리면서 그들을 돕고, 동기부여를 시킬까 연구한다”고 덧붙였다.

남 전무는 업무상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점심 시간마다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요즘 제 업무 시간의 반은 직원들과의 대화로 채워집니다. 그 내용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어요. 전에는 주로 업무상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게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무엇이 나를 두렵게 하는가?’처럼 깊은 주제부터 지극히 사소한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다양합니다.”

그는 “대화를 통해 ‘사람’에 집중하면서 오히려 업무 성과가 더 좋아졌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리더가 먼저 열린 마음으로 직원들을 바라보고 노력을 알아주고, 구체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회사에서도 월례 행사인 소통의 밤, 타운홀 미팅 등 다양한 채널과 방법으로 직원과의 소통을 독려해주고 있다.


카스의 내년 목표는 주 타깃 층 20대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브랜드’가 되는 것


남 전무의 일에 대한 자부심은 남다르다. 그는 ‘맥주 전문가’로 통한다. 카스, 오비, 카프리 등 오비맥주에서 생산하는 주요 브랜드들의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다. 수많은 맥주가 기획부터 출시까지 그의 손을 거친다. 국내 시장 점유율 60%가 넘는다. 하지만 그의 자부심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제가 하는 일은 단순히 맥주를 파는 게 아니에요. 술은 고대부터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정신적 친구였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된 술이 맥주예요. 맥주는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죠. 저는 술이 지닌 이러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정립하고 전파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일에 남다른 가치를 부여하니 더욱 신나게 일할 수 있었다고 하는 남 전무는 직원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고민하면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고 한다.

“네가 그 일을 하는 의미를 찾아라. 생계수단을 넘어 자신의 일에 대해 스스로 부여하는 가치가 명함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지요.”

이러한 가치관은 그의 브랜드 마케팅 전략에도 적용된다.

“카스 브랜드의 2019년 목표는 주 타깃 층인 20대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브랜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김치가 배추에 고춧가루를 버무린 음식 이상의 의미가 있듯이 말이죠. 카스가 그들에게 위로와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대학과 업무협약을 맺어 실패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캠페인을 펼치고, 멘토링 제공, 장학금 수여 등 젊은이들을 응원하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건전음주 캠페인, 환경보호 운동, 문화행사 등 다양한 사회 활동도 펴고 있다.

‘감사’는 내 인생의 키워드


그는 출근길 차 안에서 법륜스님을 비롯해 여러 심리학자, 뇌 과학자의 강의를 듣는다. 1시간 반 통근 시간이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 시간이다.

“자리가 높아질수록 도전과 평가도 많이 받게 됩니다. 때로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껴져 자존감이 떨어질 때도 많아요. 강의를 듣다보면 나만 특별히 모자란 것도, 잘난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마음이 한결 편해지면서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지요.”

남 전무가 퇴근 후 집에 가서 열한 살 아들과 빠뜨리지 않고 꼭 하는 일이 있다.

“잠자리에서 아이를 마사지해주며 ‘엄마는 오늘 이러이러한 감사한 일이 있었다’고 감사한 일 3가지를 말해줘요. 그러면 아이도 하루 동안 감사했던 일 3가지를 말하죠. 모자가 아주 작은 일에도 감사함을 갖게 되는 참 좋은 시간이에요.”

아이와 ‘감사 대화’를 나누며 부드러운 마사지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에 그는 무한한 에너지를 충전한다고 했다.

“전에는 회사에서의 성과가 제 인생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있고, 가정이 있고, 회사가 있다’로 순서가 정리됐어요. 인생 수레바퀴의 어느 면 하나라도 결핍되면 바퀴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음을 알게 된 거죠.(웃음)”

글/김경화(커리어 칼럼니스트, 비즈니스·라이프 코치)
사진/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동아일보 골든걸 goldengir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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