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모두가 그렇게 외웠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왔다. 하지만 팩트 체크의 잣대를 들이대면 의뭉스러운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첫째, 허균(1569∼1618)은 16세기의 인물인데 ‘홍길동전’에는 17세기 후반의 인물인 장길산이 등장한다. 둘째, 소설에 등장하는 선혜청은 18세기에 들어서야 활성화된 관청이다. 셋째, ‘홍길동전’을 제외한 모든 한글 소설은 18세기 후반부터 등장한다. 따라서 허균은 ‘홍길동전’의 저자라고 볼 수 없다. 그가 시간 여행자였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40년간 ‘홍길동전’을 연구해 온 저자 이윤석 교수는 허균이 ‘홍길동전’을 썼다는 주장이 계속되는 건 연구자들의 애국적 연구 태도 때문이라고 말한다. 허균의 선각자적 면모를 부각시키고 한글 소설의 시작점을 앞당기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역사를 ‘보고 싶은 대로’ 본 결과라는 것.
비운의 천재 개혁가가 쓴 책이라는 프레임은 올바른 독해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동해 왔다. ‘홍길동전’은 이름 없는 서민 작가가 천대받던 한글로 적서차별의 문제를 꼬집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서민의 정서와 생활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다. 책 후반부에 가면 현전하는 30여 종의 ‘홍길동전’을 종합해 복원된 ‘홍길동전’이 수록돼 있는데, 이 또한 일독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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