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옷서점’은 2017년 만우절에 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처음엔 잘 믿지 않았다. 시집만 파는 서점이라니. 서점에 온 사람들은 걱정을 많이 했다. “이런 주택가 깊숙한 곳으로 누가 오겠니. 커피나 맥주를 팔아야 하지 않겠니.” 자신이 구독하는 문예지를 받을 주소를 우리 서점으로 바꿔주거나, 책꽂이를 기증하는 사람도 있었다.
역시나 장사는 잘되지 않았다. 손님은 하루에 0.7명 온다. 낮에 열 수 없어 저녁에만 열게 됐다. 손님이 없으니 다른 생각이 많이 났다. 시인들의 시를 가사로 노래를 만들어 녹음했다. ‘시활짝’이란 이름으로 음반을 발표했다. 반응이 없자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밤샘 촬영을 한 적도 있고, 남방큰돌고래를 찾아 인도네시아까지 가서 촬영을 하기도 했다.
시집 전문 서점을 낸 까닭은 시집이 소외받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큰 서점이라도 유명한 시집 빼고는 시집을 잘 진열해 놓지 않는다. 우리 서점에서 손님이 몰랐던 좋은 시집을 만나는 기쁨을 느끼도록 하고 싶다. 제주도에서 시인을 꿈꾸는 청년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
시집은 절판이 잘 된다. 초판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귀한 책들이 많다. 시옷서점은 제주 지역 출판사인 한그루와 함께 시집 리본시선을 만들었다. 그 첫 책으로 강덕환 시인의 시집 ‘생말타기’를 26년 만에 복간했다. 그리고 독립출판사 ‘종이울림’을 만들어 두 여고생의 시집을 묶었다. 제목은 ‘십팔시선’이다. 스무 살이 되기 전 그들만의 세계를 저장해두고 싶었다.
이달에는 ‘시활짝’ 2집을 제작할 예정이다. 팟캐스트도 시작했다. 시를 읽고,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마도 소수의 몇 사람만 듣겠지. 그래도 우리는 롱런을 꿈꾼다. 내년에는 문예지나 웹진도 만들어볼 생각이다. 이름도 이미 지었다. ‘시린발.’ 발이 시린 시인들을 위한 문예지.
어떤 날엔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고, 귀뚜라미 한 마리만 들어온 적이 있다. 손님의 반 이상은 시인들이다. 시는 무용한 것들을 사랑한다. 천만다행으로 건물주가 시인이라서 이런 무용한 가게를 위해 낮은 임대료를 받는다. 우리는 그의 장수를 기원한다.
텐트를 들고 온 어떤 손님은 시옷서점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 자고 갔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그는 오름에 올라 별을 찍는다고 했다. 그런 것을 찍는 그의 마음처럼 우리는 저 멀리 있는 시를 찍어 여기에 펼쳐둔다. 그러한 시들이 반짝이는 이곳은 무용한 마음을 파는 작은 서점이다.
현택훈 시인·제주 ‘시옷서점’ 대표
○ ‘시옷서점’은
제주 제주시 인다13길에 있는 시집 전문 서점이다. 시인 부부가 운영한다. 시집과 함께 시인이 쓴 산문집, 제주 작가의 책들을 주로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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