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사람들이 자신의 끔찍함을/어떻게 견디는지//자기만 알고 있는 죄의 목록을/어떻게 지우는지//하루의 절반을 자고 일어나도/사라지지 않는다//흰색에 흰색을 덧칠/누가 더 두꺼운 흰색을 갖게 될까.’(‘캔들’에서)
시 ‘캔들’을 읽었다는 한 독자는 안미옥 씨(34)에게 인스타 DM(메시지)을 보냈다. “제가 겪었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감정을 대신 얘기해주신 것 같습니다.” ‘어항 속 물고기에도 숨을 곳이 필요하다’로 시작되는 시 ‘한 사람이 있는 정오’를 봤다면서, 어떤 독자는 자신이 지나온 힘든 시기를 털어놓은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간 쓴 작품들을 묶어 책으로 낼 때만 해도 ‘내가 쓰는 시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라며 회의하던 시인은 평범한 독자들의 호응에 연일 놀라고 있다.
지난해 출간한 ‘온’(8000원·창비)은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펴낸 첫 시집이다. “시인들끼리는 농담조로 ‘1쇄 시인이 진정한 시인’이라고 해요. (내 시집이) 1쇄나 나갈까 싶은 마음이었죠(웃음).” ‘온’은 5쇄(6000부)를 찍었고 안 씨는 올해 김준성문학상과 현대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핫한’ 시인이 됐다.
글쓰기에 입문한 계기를 묻자 안 씨는 “반성문”이라고 했다.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종종 꾸중을 들은 뒤 반성문을 쓰라는 과제를 받아서다. 분량을 채우려면 당시 행동의 복기뿐 아니라 과거를, 내면을 깊이 돌이켜 파고들어야 했다. 자연스레 글쓰기 훈련이 됐다. 고교 때 드라마 ‘가을동화’를 보고 방송작가를 꿈꾸면서 문예창작과를 지망했지만 시와 소설을 탐독하는 학과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고 시 창작을 하게 됐다. 3, 4년 습작을 하다가 ‘이 정도면 본격적으로 투고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처음 도전한 신춘문예가 당선됐다.
21세기 문인의 정의를 묻자 안 씨는 “언어라는 도구를 갖고 일을 하는 노동자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장석주 시인은 트위터에서 스스로를 ‘문장노동자’로 소개한다. 주5일 산문을 써서 독자들에게 전송하는 작가 이슬아 씨는 ‘연재노동자’로 불린다. 안 씨 역시 영감을 기다리는 시인의 이미지가 아니라 떠오르는 말들을 종일 노트북에 쳐 넣으면서 몇 달에 걸쳐 시 한 편을 완성해 내는 노동자의 모습이 자신이라며 웃음 지었다.
‘꾸준하게 시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던 등단 무렵의 각오가 변함없는지 묻자 안 씨는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한다”며 힘겨운 표정을 지었다. ‘노동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얼굴일 터이다. 그러나 시인은 “힘들어도 한다. 시를 쓰고자 하는 힘으로 생각을 할 수 있어서다”라고 말을 이었다. “제 작품이 내면을 잘 아는 사람의 것 같다는 평을 받기도 했어요. 사실은 사람들의 내면을 너무 알고 싶어서 그게 도대체 뭘까 생각하면서 쓴 것들입니다.” 시를 썼기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는 시인은 “제가 그렇듯 제 시를 읽는 사람들이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헤아려 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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