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등 물품 나눠 쓰고, 동네 사랑방 역할까지 톡톡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20일 03시 00분


[작은 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4>부산 영주동 글마루작은도서관

부산 글마루작은도서관에서 14일 유치원생들이 구연동화를 듣고 있다. 이 도서관에서는 주민들의 모임도 종종 열린다. 부산=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부산 글마루작은도서관에서 14일 유치원생들이 구연동화를 듣고 있다. 이 도서관에서는 주민들의 모임도 종종 열린다. 부산=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검정 블라우스 너무 예뻐서 가져갑니다.” “핫팩 주머니, 잘 쓸게요.” “예쁜 양말 잘 신을게요! 멋진 책갈피도요!”

14일 찾은 부산 중구 동영로(영주동)의 글마루작은도서관 2층 한편에는 공룡인형, 장갑, 마법천자문 카드, 장식용 병 등이 곱게 놓여 있었다. 위쪽에는 물건을 가져간 주민들이 고마운 마음을 글로 써서 남긴 포스트잇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이 도서관이 운영하는 물품 공유 서비스 ‘함께해 존(zone)’이다. 팔찌, 손수건, 딱풀, 티셔츠, 치마를 비롯해 주민들이 쓰지 않는 작은 물건들이 이곳에서 새 주인을 찾는다.

부산민주공원 아래, 터널이 지나가는 언덕에 위치한 이 도서관은 KB국민은행과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의 도움으로 개관한 부산 중구의 1호 구립도서관이다. 마을은 6·25전쟁 당시 몰려든 피란민이 산복도로를 중심으로 집을 짓고 살면서 생겨났다. 지금은 젊은 신혼부부와 노인층이 많이 산다. 공중화장실 터였던 곳에 2010년 12월 문을 연 이 도서관은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주민 모임도 여기서 많이 해요. 더 큰 도서관도 있지만 가깝고 친숙하니까 여기로 오지요.”

도서관이 생기기 전부터 이 동네에 살았다는 박명화 씨(61)가 중국어 책을 보다가 말했다. 도서관은 학부모들을 비롯해 모일 곳이 마땅치 않은 주민들에게 장소를 무료로 빌려준다. 물품뿐 아니라 장소도 공유하는 셈이다. 도서관의 책 읽기 모임에서 활동해 온 주민 김경애 씨(50)는 “도서관은 주민들이 편하게 들를 수 있는 또 하나의 집”이라고 말했다.

가을이면 ‘글마루 가을 잔치’가 열린다. 책이나 의류 바자회, 음악 공연, 시 낭송 같은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주민 100여 명이 모이기도 한다. 방학 때는 초등학생들이 도서관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캠프를 연다. 초등생 독서 지도 프로그램은 5년 넘게 사랑받고 있다. 공예와 예술 교육 프로그램은 주부에게 특히 인기다. 주민 전현옥 씨(44)는 “어릴 때부터 함께 도서관을 다니던 아들이 이제 고교생이 된다”며 “자연스럽게 자원봉사도 하게 돼 해마다 환경, 인권, 평화 같은 주제를 정해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

이날도 인근 유치원생들이 도서관에 모여 동화구연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사서 김은지 씨(30)는 “누구나 편하고 자유롭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과 열심히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글마루도서관#작은 도서관#부산 구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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