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여부에 대해 많은 관심이 몰렸습니다. 태영호 전 공사도 저서를 통해 북한이 두려워 한 가톨릭 열풍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최근 염수정 추기경은 “교황의 방북이 북한의 비핵화 뜻 없이는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의 전향적 결단을 촉구하는 메시지로 읽혔는데요. 만약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교황을 초청한다면 그 의도는 무엇일 것이며, 북한 측에서 종전선언, 제재 해제 등과 같은 정치적인 조건을 교황 방북에 결부지어 제안할 가능성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A.교황 방북 여부에 관심이 몰린 것은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문재인 대통령의 중개(仲介)에서 비롯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교황 방북을 제안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교황님이 평양을 방문하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고 밝혔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입니다. 문 대통령은 10월 18일 로마 바티칸 교황궁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방북을 권유했습니다.
교황 방북이 성사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교황의 해외 방문은 가톨릭 수장으로서 신자를 찾는 사목 방문(Pastoral Visit)이 원칙입니다. 방문하는 나라에 교회와 사제가 존재해야 하는데요. 북한에도 교회와 신자는 있으나 바티칸이 인정한 사제는 없습니다. 가톨릭에서 주교는 바티칸이 임명하게 돼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와 인권 문제도 교황 방북의 걸림돌이고요.
북한에도 성당과 교회가 있기는 합니다. 1988년 장충성당과 봉수교회, 1989년 칠곡교회가 평양에 세워졌습니다. 2013년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한 박창일 신부가 전해준 얘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북한에도 신앙의 자유는 있습니다만, 북한 사람들이 종교를 잘 몰라요. 한번은 문익환 목사의 아들이 문규현 신부냐고 묻더군요. 신부가 결혼하지 않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북한에서 결혼 안 했다고 말하면 젊은 여성들이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웃어요.”
북한 헌법 제68조에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자유’는 ‘종교의 자유’와 다릅니다. 종교의 자유는 ‘무종교인 또는 다른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을 포교·개종할 자유’를 포함하나 신앙의 자유는 믿고, 기도할 자유만을 의미합니다. 북한에서 선교를 하면 체포돼 처벌을 받습니다.
‘2017 북한 종교자유백서’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탈북민 중 99.6%가 “북한에서 종교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고 응답했습니다. “평양이 아닌 지방에 북한 당국이 인정한 합법적 예배 장소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98.7%가 없다고 답했고요.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의 2018년 연례보고서는 “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다”면서 “종교가 있는 것처럼 보이고자 허가한 예배당에서도 북한 정권이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지적합니다.
요컨대 현재 북한에 ‘숨 쉬는’ 종교는 없습니다. 학교에서도 종교는 나쁘다고 가르칩니다. 북한에서 발행한 ‘조선어사전’이 가톨릭 신부를 ‘바티칸의 앞잡이로서…’라고 정의한 적도 있습니다. 평양의 교회와 성당은 대외 선전용이라고 봐야 합니다.
북한이 실제로 교황을 초청한다면 핵 이슈에 물린 관심을 분산시키고 정상국가의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시도일 겁니다. 북한이 현 국면에서 가장 원하는 것은 제재 완화인데요. 교황 방북을 통해 제재 완화와 관련한 외교적 지지를 늘릴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북한 처지에서 교황 방북은 리스크도 적지 않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79년 공산 정권 치하의 폴란드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조국이 폴란드인데요. 요한 바오로 2세는 폴란드를 찾아 “인간의 존엄을 위해 현재의 투쟁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교황의 폴란드 방문이 동유럽 민주화의 촉매제 구실을 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평양을 방문하면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할 겁니다. 교황의 북한 방문은 세계적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황이 미사에서 인권 문제 등을 거론하면 어떻게 될까요. 북한이 받을 타격이 큽니다.
질문에서 언급하신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의 저서를 읽지 않은 분을 위해 평양이 ‘가톨릭 열풍을 두려워했다’는 대목을 요약해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태 전 공사는 교황을 초청하라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1991년 외무성과 통일전선부 관료로 이뤄진 교황 초청 추진 상무조(영어로 표현하면 TF)에서 일했습니다. 김일성과 달리 김정일은 교황 초청에 반대했습니다. 진짜 교인이 늘어날까 우려했다는 건데요. 김정일의 뜻을 파악한 통전부 간부들은 상무조 일을 게을리 한 채 책 읽고, 잡담하면서 태 전 공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교황이 조선에 오면 그 이후의 뒷감당은 통전부와 보위부가 해야 한다. 외무성은 지금 조선에 교인이 있는지, 없는지, 있으면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 교황이 다녀가면 천주교 신자가 무섭게 늘어날 텐데 누가 책임지겠는가.”
평양이 종전선언, 제재 해제 등과 같은 조건을 교황 방북에 결부지어 제안할 가능성은 없느냐고 물으셨는데요. 종전선언, 제재 해제와 교황 방북은 서로 무관한 사안입니다. 종전선언, 제재 해제는 비핵화 과정과 맞물려 진행되는 것으로 교황의 사목 방문과는 결부될 게 없는 사안입니다.
요약하면 북한이 교황 방북을 통해 얻을 게 많지는 않아 보입니다. 또한 교황이 북한을 찾으려면 바티칸에도 명분이 필요한데 현재 국면에서는 충족되지 않은 듯합니다. 교황이 평양을 방문해 빛과 희망을 던져주길 소망합니다만 방북이 실현되는 것은 비핵화가 본궤도에 오른 후의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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