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성북구의 한 롤러장. 1990년대 인기그룹 ‘듀스’의 ‘나를 돌아봐’가 흘러나오자 30여 명이 환호했다. 이 노래가 나온 1993년에 태어난 김민영 씨(25·여)는 익숙한 듯 팔과 다리를 휘저었다. 김 씨는 “유튜브로 당시 공연을 찾아보면서 춤을 익혔다”며 “옛날 감성을 느낄 공간을 찾다보니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추억팔이’로 소비되던 복고문화가 최근 10대와 2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했던 복고 열풍과는 다르다. 경험하지 못한 옛 것에 열광하는 청년들이라는 점에서 ‘뉴트로(New-Tro·새로움과 레트로를 합친 신조어)’ ‘영트로(Young-Tro)’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1970, 80년대를 주름잡던 롤러장은 1990년대 사라졌다 지난해부터 젊은이들에게 ‘핫’한 공간이 됐다. 청남방에 청바지 등 ‘청청패션’이나 교련복을 입고 오는 손님들도 적지 않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복고 컨셉으로 롤러장 인증사진을 올리는 문화도 자리 잡았다. 이날 롤러장을 찾은 김민지 씨(22·여)는 “복고 의상의 ‘성지’인 광장시장에는 영화 ‘써니’ 사진들을 붙여놓고 청바지 등을 팔고 있다”고 했다.
음악영화로 국내 최대인 830만 명을 동원한 영화 ‘보헤미안 렙소디’의 흥행도 청년층의 영향이 컸다. CGV리서치센터에 따르면 관람객 가운데 20·30대 비중은 60%에 육박한다. ‘싱어롱(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 문화에 대한 반응도 폭발적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2002년 월드컵처럼 세대를 초월해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한 사회적 이벤트가 없었다”며 “무한 경쟁에 익숙한 젊은층이 극장에서 ‘싱어롱’을 하고 함께 어울리는 경험이 새로웠던 것”이라고 말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을 비롯해 비트 중심의 음악을 향유했던 젊은이들에게 멜로디가 강하고 중독성 있는 퀸의 노래가 신선하게 다가갔을 것”이라고 했다.
옛 것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은 개화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구한말 컨셉트 사진으로 지난해 문을 연 대구의 산격동사진관은 1년 만에 서울과 부산에 진출했다. 노웅희 대표는 “복고 의상을 대여해주다보니 호기심 많은 청년들이 주로 사진관을 찾는다”며 “개화기 의상은 전통한복과 다르게 남성 고객들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남성은 깔끔한 쓰리피스 슈트에 붉은 계열의 넥타이를 매고, 여성은 프릴 장식이 달린 붉은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는다.
종로구 익선동은 그야말로 옛 것의 향연이다. 22일 ‘최신게임없음’ ‘16비트칼라’ 등이 써 붙여진 ‘콤콤오락실’에서 10여 명의 젊은이들이 테트리스, 뿌요뿌요 등 고전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김종민 씨(20)는 “그래픽 좋은 요즘 게임들보다 흥미롭다”며 “‘슈퍼컴보이’를 집에 놓고 친구들과 게임을 하는 것도 취미가 됐다”고 했다. ‘만홧가게’에서는 추억의 만화 월간지 ‘챔프’, ‘윙크’가 인기다. ‘엉클비디오타운’에서는 개봉된 지 5년 이상 된 영화를 빔프로젝터로 상영한다. 라면땅과 핫도그 같은 추억의 간식을 먹으러 이곳을 찾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
낡은 옛 건축물도 ‘힙’한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종로구 서대문여관과 보안여관은 30년이 넘은 여관 건물의 외관은 그대로 유지한 채 내부를 전시회장, 게스트하우스로 꾸몄다. 부티크 호텔로 변신한 종로구 여관 ‘낙원장’에 묵은 이정미 씨(24·여)는 “요즘 호텔에 비해 낡고 허름하지만 객실에 LP 플레이어가 있어 옛날 느낌이 물씬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트렌드 분석가인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은 “기성세대는 복고에서 추억을 떠올리지만 젊은 세대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움’에 열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