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나무늘보는 말하지 “나처럼 살아보면 어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26일 03시 00분


그림책 ‘천천히 쉬어가세요’ 쓴 홍콩 작가 톤 막과 번역자 이병률 시인

‘천천히 쉬어가세요’에서 나무늘보는 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톤 막은 선 몇 개로 섬세한 감성을 표현해낸다. 이병률 시인은 “책을 번역하며 힘 빼고 간결하게 표현한 글과 그림이 더 진한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했다. 북레시피 제공
‘천천히 쉬어가세요’에서 나무늘보는 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톤 막은 선 몇 개로 섬세한 감성을 표현해낸다. 이병률 시인은 “책을 번역하며 힘 빼고 간결하게 표현한 글과 그림이 더 진한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했다. 북레시피 제공
이 책은 홍콩과 대한민국, 두 나라를 대표하는 ‘힙스터’들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플랩잭스(FLABJACKS)’라는 활동명으로 나이키, H&M 등 유명 패션 브랜드와 협업해 온 홍콩의 비주얼 아티스트 톤 막(30)이 쓰고 그렸고, 젊은 감각의 감성적 문장으로 사랑받는 이병률 시인(51)이 우리말로 옮겼다. 이 시인은 19일 서울 종로구에서, 톤 막 작가는 이메일을 통해 각각 만나 나눈 이야기를 두 사람의 대화 형식으로 정리했다.

▽이병률=서른 살에 인도를 여행하다 처음 명상을 접했어. 푸나 지역의 한 명상학교에 들어갔는데, 설거지나 채소 손질 같은 잡일을 하며 마음을 다스리라고 하더라. ‘명상’ 하면 가만히 앉아 참선하는 광경만을 상상했는데 말이야.

톤 막은 “한국 독자들이 나무늘보와 함께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며 나무늘보가 손가락 하트를 만드는 모습을 그려 보냈다. 톤 막 제공
톤 막은 “한국 독자들이 나무늘보와 함께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며 나무늘보가 손가락 하트를 만드는 모습을 그려 보냈다. 톤 막 제공
▽톤 막(이하 톤)=나도 명상에 정해진 방법이나 규칙은 없다고 생각해. 불안을 극복하고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 어떤 것이든, 예컨대 그림 그리기나 달리기, 아니면 양치질도 명상이 될 수 있지.

▽이=헌사에 ‘첫 명상 스승이었던 어머니에게 바친다’고 썼던데….

▽톤=10대 시절, 학교 시험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내게 엄마가 마음을 다스리는 호흡법을 알려주셨어. 내 인생 첫 명상이었지.

▽이=요즘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명상이나 마음 다스리기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어. 그쪽은 어때?


▽톤=여기도 마찬가지야. 내 생각에 그건 종교와 전통이 젊은 세대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를 되돌아볼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명상이 어느 정도 종교의 역할을 대신해주는 건 아닐까.

▽이=네 그림을 보고 청유형 문장과 닮았다고 생각했어. 선 몇 개로 그린 작은 표정과 몸짓만으로 넌지시 메시지를 던진다고 할까. “나처럼 해 보는 건 어때?”라고 말하는 나무늘보처럼 말이야.

▽톤=칭찬 고마워. 처음 나무늘보를 봤을 때, 저 느릿느릿한 동물은 분명 ‘혼자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아 슬퍼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어느 날, 실은 다들 나무늘보처럼 살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지. 느리고 걱정 없는 삶 말이야.

▽이=나도 그래. 역자 소개에도 ‘한 달에 열흘은 나무늘보로 변신한다’고 썼는걸. 스마트폰만 좀 덜 보면 마음 다스리기가 더 쉬워질 텐데…. ‘스마트폰’이야말로 명상의 반대말이 아닐까.

▽톤=나도 늘상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데, 찔리는군! ‘연결’과 ‘분리’의 균형을 잘 잡는 게 중요해진 세상인 것 같아.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톤막#이병률#천천히 쉬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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