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C방에 자주 가요. 좁은 공간에 아르바이트생과 손님들이 늦은 밤까지 함께 있다 보니 크고 작은 마찰이 종종 생겨서 ‘저러다 싸움이 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가해자, 피해자 모두 원래는 저처럼 평범한 20대였을 텐데 자제력을 잃으면서 벌어진 일 같아 안타까워요.”-서상혁 씨(27·취업준비생)
동아일보 조사에서 20대들은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을 10대 뉴스 가운데 2위로 꼽았다. 1위로 선정된 미투(#MeToo·나도 당했다)는 여러 개의 사건이 일어나면서 사회현상으로 확대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단일 사건으로는 PC방 살인사건이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것이다. 자신의 삶과 밀접한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이 사건을 관심 뉴스로 선정한 20대들은 PC방에 얽힌 경험을 갖고 있었다. 대학생 서민준 씨(25)는 “20대 남자에게 PC방은 자기 집 같은 곳인데 나도 언제든 당할 수 있는 일 같아 두렵다”며 “예전엔 PC방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에게 ‘조용히 하라’며 항의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가만히 있는다”고 말했다.
○ “PC방 살인사건, 내 경험과 비슷”
20대들이 선정한 10대 뉴스 하나하나에는 고단하고 막막한 일상에서 어떻게든 행복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의 삶과 경험이 녹아 있다. PC방 살인사건에는 본인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겪은 ‘을(乙)’로서의 경험, 공권력의 도움이 필요했을 때 외면 당한 경험이 투영됐다.
카페 아르바이트생 최혜민 씨(24·여)는 “술 취한 남자 손님이 자꾸 나를 노려보고 때릴 것처럼 위협해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다”며 “PC방 살인사건 때처럼 출동한 경찰은 손님을 데리고 나갔을 뿐이었다. 몇 분 안 지나 그 손님이 다시 들어와 ‘네가 신고했느냐’며 위협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알바세대’인 20대들은 최저임금 인상을 몸소 실감하는 당사자였다. 최저임금 인상이 10대 뉴스 가운데 네 번째로 꼽힌 이유다. 군 제대 후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백동우 씨(22)는 “입대하기 전에는 10시간 일하면 5만 원 벌었는데 지금은 8만 원 번다”며 “어른들은 고민이 많은 모양이지만 아르바이트하는 입장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기분 좋은 뉴스”라고 말했다.
반면 최저임금 인상을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는 처지인 20대도 있었다. 대학생 김정훈 씨(27)는 “아버지는 자영업을 하고 나는 코인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친구들은 시급이 올라서 좋다고 하지만 나는 아버지 생각이 난다. 하는 것 없이 앉아 있는 시간에는 사장에게 괜히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자리 창출·워라밸 희망
취업을 앞둔 20대에게 근로시간 단축은 삶의 질과 직접 연결되는 이슈다. 일자리 증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실현에 대한 기대가 주를 이뤘다. 취준생 박경난 씨(26·여)는 “대기업 계열사에서 일하는 어머니는 일한 시간만큼 수당을 받는데 일찍 퇴근하는 날이 많아져 급여가 줄었다고 걱정하더라”며 “내 입장에서는 어쨌든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것이고 실제 예전보다 사람을 더 뽑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이경은 씨(23·여)는 “이미 취업한 친구 중 일주일에 35시간만 일하는 친구가 있다. 취업 뒤에도 ‘워라밸’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 뉴스를 보며 부모의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20대도 있었다. 이들의 부모는 대부분 일터에서 늦은 밤까지 일했던 50, 60대다. 대학생 최윤정 씨(21·여)는 “아버지가 원래는 매일 오후 8시는 돼야 퇴근했다. ‘주 52시간제’ 이후로는 오후 6시엔 집에 오고 개인 약속을 잡거나 여가 생활을 즐긴다”고 말했다. 과로로 인한 아픔을 겪은 응답자도 있었다. 서민준 씨는 “아버지가 주 6일, 하루 평균 12시간씩 일하시다 5월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토로했다. 이어 “평생 일만 하고 사신 아버지가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더 이상 일하다 죽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 ‘주 52시간제’ 도입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 ‘미투’ 열풍에 남녀 시각차
미투 열풍은 20대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100명의 응답자 중 여성은 53명이었는데 이 중 28명(52.8%)이 미투를 올해 주요 뉴스로 꼽았다. 남성(47명) 역시 미투를 주요 뉴스로 꼽은 응답자가 20명(42.6%)에 달한다. 여성 응답자들은 실제 성희롱·성추행을 당했던 경험을 설명하며 미투 폭로자들에게 공감을 표했다. 구모 씨(22·여)는 “인턴 할 때 상사가 나를 이성으로 대하며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싫었지만 ‘인턴 끝날 때까지 3개월만 더 참자’고 생각하며 버텼다”고 말했다.
남성들의 응답 중에는 미투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대학생 이모 씨(25)는 “여학생들과 대화할 때 자연스럽게 어깨를 두드리거나 하이파이브를 하곤 했는데 미투 이후로는 머뭇거리게 됐다”고 말했다.
페미니즘 논란도 20대의 눈길을 끌었다. 온·오프라인에서 젠더 갈등을 겪은 것이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대학생 임재민 씨(26)는 “혜화역 시위(불법 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나 워마드(여성 우월주의 사이트)를 둘러싼 논쟁이 인터넷에서 워낙 ‘핫’해서 관심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김은지 eunji@donga.com·윤다빈·남건우·최수연 기자
※본보의 ‘전국 20대 100명 심층 인터뷰’는 강동웅 공태현 김소영 남건우 박상준 박선영 신아형 여현교 염정원 이소연 최수연 기자가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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