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끄러움을 어찌할 것인가? 나의 ‘행복극장’은 지난해 12월 초에 시작되었다. 투고할 원고를 퇴고하고 난 후 잠시 상상의 나래를 폈다. 당선된다면 상금을 어찌할지, 축하 인사에는 어찌 응대해야 할지 즐거운 플래시 포워드를 펼쳤다. 그러나 ‘행복극장’의 내러티브는 오프닝 시퀀스와 전혀 상관없이 흘러갔다. 하루하루 밀려드는 업무와 대학원 수업 과제들로 인해 오프닝 시퀀스의 화려한 플래시 포워드는 일상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까맣게 잊고 있던 상상의 플래시 포워드가 낯선 전화번호를 타고 느닷없이 내게 도래한 순간, 그만 부끄러워졌다. 나의 성과는 당첨인가? 당선인가? 혹은 그 사이 어디에서 길을 잃은 결과인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부끄러움은 고개를 더욱 쳐들었다. 텅 빈 지식창고에서 간신히 꺼낸 몇 줄의 문장으로 얻은 이 영예가 나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영화를 공부한다는 사실에 자존감을 불어넣어준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서대정 문관규 조선령 교수님, 인생의 멘토인 최찬열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 언니 이모 이모부 친구들 그리고 나의 부끄러움을 키우는 데 한몫했던, 지식이 충만한 대학원 선생님들과 교우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지금 당장은 어찌해 볼 길 없는 부끄러움을 조금은 덜어낸 먼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오늘 다시 출발선에 서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어리길, 더불어 오늘의 부끄러운 영광이 먼 바다로 향해 나아가려는 나 자신에게 생의 의지를 불러오길 조심스레 기원해 본다.
△1990년 부산 출생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졸업, 동대학원 박사 재학
● 심사평
영화에 대한 깊은 이해-쉽게 풀어 쓴 필력 빛나
이번에 응모된 원고는 모두 33편이었다. 이 가운데 이창동 감독의 ‘버닝’을 다룬 장문평론이 무려 여덟 편이나 됐다. 단평도 3편이었다. 장률 감독의 ‘군산’을 비롯한 그의 작품세계를 포괄적으로 다룬 장평이 3편, 단평이 2편으로 뒤를 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세계를 다룬 장평과 ‘죄 많은 소녀’를 다룬 장편이 각각 2편이었다. 이는 예술성과 작품성을 갖춘 작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라고 하겠다. 이 가운데 다음 5편이 특히 주목할 만했다. ‘미완의 누빔점, 완성된 몽상’이라는 화두로 ‘버닝’을 풀어간 평론과 사르트르의 존재론으로 ‘버닝’의 본래성을 살핀 평론은 신선해 보였다. 최종 선택은 ‘시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로 짐 자무시의 ‘패터슨’을 분석한 평론이었다. 뉴욕 맨해튼 근교의 소도시 ‘패터슨’에서 버스 운전사로 일하는 ‘패터슨’은 운전을 하는 틈틈이 떠오르는 시상(詩想)을 비밀 노트에 적는다. 이 글은 패터슨의 일상적 행위의 의미를 매우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영화매체에 대한 평자의 이해력이 일정 수준에 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이 글은 해당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라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설득력이 있다. 평론의 순기능 중 하나가 접근하기 어려운 작품을 독자에게 안내하는 것이라면, 이 글은 그런 점에서 매우 적합한 평론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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