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책이 정말 많다. 이미 많은데 신간까지 매일 쏟아진다. 온갖 책이 가득한 대형서점에선 선택의 곤란함을 겪는 사람이 꽤 있다. 책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를 고르거나 유명 저자의 책을 구입함으로써 곤란함을 비켜갈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책만 읽은 사람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최신 유행인 아이템으로 무장했기에 정작 길거리에서 개성을 잃어버린 사람과 비슷한 처지에 빠질 수도 있다.
숨어 있는 좋은 책을 발견하는 밝은 눈을 지닌 사람, 책을 통해 자신의 고유성을 증폭시키고 싶은 사람에겐 최신 유행 상품만을 전시한 무취향의 대형서점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과 관심을 반영한 전문서점이 제격이다.
어떤 서점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을 진열할 순 없다. 서점마다 책을 선별하는 특정한 기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인테리어가 특이하다고 혹은 세련됐다고 고유의 개성이 생기진 않는다. 서점의 개성은 선별돼 전시된 책이 빚어내는 오묘한 분위기의 몫이다. 서점인은 고유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수많은 책을 읽고 검토한다. 그리고 베스트셀러가 아니라는 이유로, 유명 저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묻힐 위기에 놓인 숨은 보석을 발굴한다.
서점에 전시된 책 한 권이 하나의 음이라면, 서점인의 프레임을 통해 선별한 책이 모인 책장은 음과 음으로 구성된 음악 같다. 서점인은 각각의 음이 조화를 이뤄 하나의 음악이 되도록 이끄는 지휘자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어떤 서점은 드뷔시를 닮았고, 어떤 서점은 슈만의 음악을 연상시킨다.
서점마다 그 서점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책이 있을 수 있다. ‘니은서점’을 닮은 책을 단 한 권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오후도 서점 이야기’(무라야마 사키 지음)를 선택하고 싶다. 서점을 배경으로 동화 같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훈훈한 소설이다.
“서점 주인은 이를 필요로 하는 손님들에게 어울리는 책을 고르고 추천해왔다. 책을 읽는 습관이 아직 몸에 배지 않아 어렵사리 책장을 넘기는 젊은 고객들에게, 활자 세계에 속해 있지만 미지의 분야로 떠나고 싶어 하는 고객들에게, 그들을 위해 서점 주인은 책을 고르고 추천해온 것이다.”
‘니은서점’ 소개문이라 생각하고 읽었을지도 모를 이 문장은 ‘오후도…’에 등장하는 한 구절이다. 이 소설에서 벌어지는 일이 실제로 ‘니은서점’에서도 일어난다. 이토록 하나의 책과 하나의 서점은 닮아 있다.
● ‘니은서점’(서울 은평구 연서로·대조동)은 2018년 9월 주택가 골목에 문을 연 동네 서점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