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라운 머리카락을 묶어주고 52개월 만에 기저귀를 뗀 딸을 보면서 기적 같은 일이라며 감사하는 이가 있다. 둘째 딸 인영이가 세 살 때 백혈병 판정을 받은 후 963일간 병마와 싸운 과정을 기록한 저자가 그렇다.
현직 기자이자 두 딸의 아빠인 저자는 굵은 척수 주사를 맞으며 아파하고 고열에 의식을 잃은 채 구급차에 실려 가는 인영이를 보며 가슴을 친다. 사이사이 행복한 순간도 찾아온다. 태권도를 하고 놀이공원에서 회전목마도 타며 인영이가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에 터질 것 같은 기쁨을 느낀다. 백혈병과 싸우는 인영이와 가족의 고군분투를 생생하게 정리하는 한편 항암치료 날짜와 무균 병동 병상이 나오는 날이 열흘이나 차이 나는 등 공급자 위주로 돌아가는 의료 현실도 조목조목 지적한다.
일이 먼저였던 아빠가 가족의 소중함과 나중이 아닌 현재에 집중하는 삶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깨달았음을 고백한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에 깊이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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