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40대 초반의 성관 스님(64)은 도반들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을 찾았다. 그 장엄함에 큰 감동을 받았지만 ‘1달러’를 외치며 따라다니던 아이들의 목소리를 마음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스님이 “말년엔 이곳에서 아이들을 도우며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하자, 도반들은 “되지도 않을 소리”라며 웃어넘겼다. 그로부터 7년 뒤. 캄보디아 정부와 앙코르와트 유적 인근 땅 4만 m²(1만2000여 평)의 30년 무상 사용 계약을 맺으면서 스님의 희망은 구체화됐다. 2004년 국제개발협력 NGO 로터스월드(Lotus World)를 법인으로 등록했고 2006년 캄보디아아동센터가 개원했다. 현재 로터스월드는 캄보디아는 물론 미얀마와 라오스에서 교육과 의료, 환경 개선, 사회적 기업 설립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연말 경기 수원시 보현선원에서 로터스월드 이사장인 스님을 만났다.》
―무상 사용 계약은 기적처럼 들린다.
“2003년 기업인들과 캄보디아를 방문했는데 컴퓨터를 지원해 달라는 게 현지 요청이었다. 그런데 사업 전망이 없는지 모두 발을 빼더라. 약속해 놓고 안 지키면 그게 건달 아닌가 싶어 사비로 지원했다. 그 신뢰가 바탕이 됐고 캄보디아 현지 대사관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땅이 유적 인근에서 캄보디아 정부가 소유한 마지막 땅이라니 기적이 맞다.”
―로터스월드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연꽃처럼 나쁜 것에 물들지 말자, 불교적으로는 정토(淨土)를 만들자는 바람이 담겨 있다.”
현재 캄보디아아동센터는 100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남녀기숙사를 비롯해 교실 6칸과 도서관, 식당,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 시설 내에 ‘김안과 병원’을 개원해 2000여 명에게 무료 안과 수술을 해주기도 했다. 또 센터 외곽 프놈크롬에는 수원시와 함께하는 ‘수원마을’ 프로젝트를 통해 학교와 공동 화장실, 우물, 마을회관 건립을 지원해왔다.
―교육 관련 활동이 많다.
“수백 개의 화장실을 짓고 맑은 물을 위해 우물을 팠지만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더라. 아이들에게 신발 신기는 데 3년, 젓가락으로 밥을 먹도록 하는 데 3년 걸렸다. 교육이 뒷받침되지 않은 구호활동은 의타심만 키운다. 교육이 지속가능성이다.”
―의료 부문 성과는 어떤가.
“캄보디아는 자외선이 강해 실명 위기에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나중에는 우리 센터에 오면 눈을 뜬다는 소문이 전국에 났다. 한마디로 심 봉사 눈 뜨는 거지.”
―로터스월드를 비롯해 지구촌공생회, 프라미스 등은 불교계의 대표적인 NGO다. 하지만 개신교나 가톨릭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웃 종교에 비하면 아직 부끄러운 수준이다. 재정과 시스템에서 개선할 점이 많다. 조계종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종단의 주요 사찰이 한 분야, 한 지역을 맡아주는 것도 방법이다.”
―지난해 조계종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는데….
“총무원 호법부장과 총무부장 등 종단의 요직을 거친 입장에서 남 탓만 할 수는 없다. 나도 허물이 크다. 옛날처럼 투쟁하고 싸우는 게 아니라 좋은 일로 갚고 싶다.”
―평소 좋아하는 경전의 구절은….
“출가 결심 뒤 찾아간 해인사에서 성철 스님(1912∼1993)을 뵐 기회가 있었는데 ‘너의 존재가치가 뭐냐’고 묻더라. 멍하니 있는데, 노장 왈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고 이익 되게 하느냐가 네 가치’라고 하더라. 이게 불교의 전부 아닌가 생각한다.”
―불교계를 포함한 지도자들에게는 어떤 모습이 필요한가.
“2600여 년 전 부처님은 이미 ‘세상은 변한다. 쉼 없이 정진하라’고 했다. 범부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부처님 혜안에는 그때 이미 보인 거다. 미셸 오바마의 ‘비커밍’을 보니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늘 신문과 책, 비전 속에서 살았다고 평했더라. 그게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이다. 지도자들은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읽고, 미래세대를 위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서가에 문명과 역사를 다룬 책들이 적지 않다.
“유발 하라리, 하도 유명해서 책을 갖다 놨는데 이제 ‘하라리 신도’가 됐다.(웃음) 문명과 역사에 대한 식견이 있다면 누구의 것이든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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