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12월,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은 평양에서 회담차 만난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이 책의 원서를 내밀었다. 두꺼운 역사책을 선물로 건넨 뜻은 무엇이었을까.
올해는 제1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한 베르사유 조약 체결 100주년을 맞는 해. 이 전쟁의 기원을 읽는 시선들은 대부분 ‘독일의 호전성’에 초점을 맞춰 왔다. 유럽과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하려는 독일 빌헬름 2세 황제의 야망이 파국을 불러왔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저자는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대신 ‘어떻게’, 어떤 과정을 통해 일어났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 결론은 특정 당사자의 책임론을 비켜간다. 전쟁은 불가피한 귀결이 아니라 수많은 결정들의 연쇄적인 결과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상황을 바꿀 수도 있었다.
위기를 피할 기회는 여러 차례였다. 동맹국인 오스트리아도 독일도, 연합국인 러시아 프랑스 영국도 상대방의 적의에 놀라 더 큰 적의로 대응했다. 우방의 의도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 상대방이 피하기 바라며 기차가 마주보며 달려오는 게임이었다. 그 누구도, 빌헬름 2세마저도 전쟁을 벌일 뜻이 없이 눈물을 흘리며 이 비극에 끌어들여졌다. 설계자는 없었다.
연구의 대부분은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위 계승자가 테러리스트의 총탄에 암살되면서부터 8월 초 열강들 사이에 선전포고가 연쇄 폭발하기까지 한 달 남짓 이어진 각국 권부와 군부, 외교가 핵심부의 움직임을 파헤친다. 그 전사(前史)는 세르비아 대민족주의를 촉발한 1903년 베오그라드 정변으로 시작된다. 이어 유럽 열강들의 손잡기가 1907년 러시아-프랑스-영국, 독일-오스트리아의 동맹으로 귀결되면서 대충돌의 필연적인 조건이 조성되고, 총성이 터진다.
황위 계승자를 잃었지만 오스트리아는 일을 키울 생각이 없었다. 선전포고 없이 베오그라드를 타격했다면 다른 나라들이 양해할 수도 있었지만 기회를 놓쳤다. 세르비아에 최후통첩을 보낸다는 결정은 사전에 누설됐고, 러시아의 강경책을 불러왔다.
러시아 역시 일을 키울 맘은 없었다. 동원령을 내렸지만 강력한 경고 정도로만 생각했다.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빌헬름 2세는 오스트리아 황제에게 세르비아가 양보할 거라고 장담했다. 그는 호전적이기는커녕 분쟁이 임박할 때마다 몸을 사리는 군주였다. 프랑스와 영국도 결정자들의 우유부단과 눈치 보기는 똑같았다.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거대한 거래가 진행되고 있다. 예측 불가능하다는 평판을 받는 지도자들 사이의 거래다. 판돈은 크고 속내는 다르다. 핵단추라는 거대한 위험물 위에서 진행되는 도박이다. 험한 말이 오갔던 지난날도 생생하다. 물론 좋은 결과를 누구나 기대하고 그래야만 한다.
그런 한편으로 나라 사이의 협상에 있어서 과단성의 부족과 과잉, 동맹에의 과신, 여론에 끌려다니기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100년 전과 오늘이 다르지 않다. 세계 전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장벽과 고립과 적대감이 늘어나는 이 시대에 대해 미래의 역사가가 ‘당시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었다. 파국은 피할 수 있었다’고 말하게 되지는 않을까.
“1914년에 정치인들이 얻고자 다툰 상(賞) 가운데 그 무엇도 뒤이은 대재앙을 감수할 만큼 가치 있지 않았다. 1914년의 주역들은 꿈에 사로잡힌 채 자신들이 불러들일 공포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몽유병자(sleepwalker)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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