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전쟁터’ TV 예능 급식체 논란
‘한글 파괴’ 지적에 방송위 제재 강화… 방송사 內서도 신-구세대 의견 충돌
지난달 한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ㅇㅈ(인정)’이란 자막을 두고 담당 PD들 간에 묘한 신경전이 일었다. “방송용으로 부적합하다”며 자막을 삭제한 선배 PD에게 “그 장면엔 ‘급식체’(급식 먹는 초중고교생들이 쓴다는 뜻의 인터넷 은어)가 최선”이라며 후배 PD가 반발했다. 한 지상파 PD는 “자막이 방송국 내 세대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며 “앞으로 더 괴상한(?) 용어가 많아질 텐데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TV 예능이 ‘자막 전쟁터’가 됐다. 신조어와 급식체를 어느 수준까지 써야 하는지 논란이 일고 있다. 예능의 흥미를 높이는 데 자막은 갈수록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추세. 이 때문에 제작진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지만 명확한 기준이 없어 혼란이 커지고 있다.
시작은 2년 전이다. TV에 스며든 급식체 등 ‘한글 파괴’ 용어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제재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방심위는 지난달 3일에도 우리말을 훼손하는 자막을 썼다며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 행정제재인 ‘권고’를 내렸다. ‘핵인싸’, ‘득템’, ‘S땅해’, ‘만렙’ 등 제재 대상에 오른 자막 종류도 다양하다.
하지만 방송에선 급식체가 버젓이 제목이 된 프로그램이 생기는 게 현실. 지난해 12월 tvN 드라마 ‘좋맛탱’(급식체 ‘존맛탱’을 방송용으로 순화)은 제목의 적절성을 두고 누리꾼들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앞서 온라인에 게재된 예능 클립 제목은 이미 급식체 사용이 일상화됐다. KBS ‘해피투게더4’, SBS ‘런닝맨’, tvN ‘국경없는 포차’ 등도 ‘광탈잼’, ‘추억돋네’, ‘갑분싸’ 등을 빈번하게 쓴다.
방심위 제재 이후 일부 제작진은 급식체를 자막으로 쓰지 않거나 ‘갑분싸’를 ‘갑자기 분위기 싸해짐’으로 바꾸는 등 부득이한 줄임말을 풀어 써주기도 한다. 하지만 주로 영상에 자막을 입히는 젊은 조연출들은 “혐오나 차별적 표현이 아니라면 트렌드를 반영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지상파 PD는 “자막 사용의 기준이 사실상 메인 PD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며 “유튜브에선 일상화된 용어인데 왜 TV에만 까다로운지 모르겠다”고 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방송언어는 표준어를 원칙으로 하되, 언어생활을 해치는 억양, 어조 및 비속어, 은어, 유행어, 조어 등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방심위 관계자는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과거 심의 사례 등을 참고해 유동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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