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가 그야말로 살아 숨쉰다. 배우들의 숨결과 감정 표현을 따라 무대의 색채가 시시각각 변한다. 때론 무대가 계단처럼 높아졌다 낮아지며 360도 회전한다.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무대는 배우들에게 최고의 비극적 놀이터가 됐다.
연극 ‘오이디푸스’는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와 무대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을 각색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을 받은 오이디푸스의 운명과 비극을 그렸다. 오이디푸스 배역의 황정민은 운명 앞에서 울부짖으며 관객에게 서글픈 에너지를 전달한다.
작품은 극장의 깊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건물 기둥을 겹겹이 배치해 관객 앞에 고대 그리스 궁전이 놓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배우들이 무대 깊은 곳부터 관객 바로 앞까지 뛰어다닐 정도로 동선을 폭넓게 사용했다.
다양한 무대장치와 특수효과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회전하는 무대에서 걷는 오이디푸스가 계속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장면은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존재를 표현했다. 극 후반부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찌를 땐 음향에 맞춰 피를 뜻하는 붉은 천막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대체로 어두운 톤이지만 빨강, 초록, 파랑 빛깔의 무대 색채 변화 덕에 눈이 지루할 틈이 없다.
압권은 오이디푸스가 무대 밖으로 나와 지팡이를 짚고 걷는 장면. 오이디푸스를 비추는 조명 외엔 극장 안의 모든 특수효과가 사라진다. 객석은 숨소리도 없이 자체 음 소거 모드로 전환한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작품의 마지막 특수효과가 된다. 황정민 배해선 남명렬 정은혜 등 출연. 24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3만3000∼8만8000원. 13세 관람가. ★★★★(★ 5개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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