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산맥의 지형 지리를 파악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건 현지인이라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른 번쯤 찾은 내게도 여전히 그 실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서다. 그런데 최근 오스트리아의 한 친구로부터 얻은 지도가 그런 나의 몽매를 깨우쳐주었다. 커다란 포스터 크기의 이 지도엔 동서로 뻗은 알프스산맥이 3차원 입체로 몽땅 담겼다. 그걸 펼친 순간, 그동안 조각조각으로 기억돼 온 알프스산맥이 순식간에 한 개의 큰 그림으로 완성됐다. 이런 걸 인사이트(Insight·통찰)라고 한다던가. 마치 신처럼 한눈에 거길 내려다보게 되니 의문과 궁금증이 통쾌하게 사라졌다. 내가 다녀온 여기저기가 어떻게 연결되고 얼마나 가까운지, 왜 거길 뮌헨과 취리히, 토리노에서 찾아야 했는지가 자명해진 것이다.
알프스산맥을 영토로 가진 국가는 모두 일곱.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그리고 리히텐슈타인이다. 지형상으로 보면 알프스산맥은 이탈리아반도의 모자 격. 그 산괴를 벗어나면 동서남북 모두 평지와 구릉이다. 이 이북에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동→서)가 있고 이남이 아드리아해를 낀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반도다. 이런 알프스산맥에서 중심지라고 하면 어딜까. 인스브루크(오스트리아)이다. 이 험준한 산악에서 유일하게 동서남북 사통팔달의 십자로에 위치해서다. 북으로는 뮌헨, 남으로는 롬바르디아평원의 베네치아(이탈리아), 동으로 가면 빈, 서로 가면 스위스의 취리히로 연결된다.
알프스는 알파인스키의 고향이다. 19세기 말 마티아스 츠다르스키가 산악 경사면을 타고 내려올 수 있게 바인딩과 회전 기술을 개발한 게 시초. 오스트리아 프랑스가 그 알파인스키의 종주국을 자임하는 것은 거기서 비롯된 알프스산악의 스키 문화 산실이라서다. 따라서 알프스산맥엔 스키장이 셀 수도 없을 만치 많다. 그중에서도 주요 지역이라면 스위스 생모리츠와 체르마트, 융프라우, 프랑스 동편 사부아주, 오스트리아의 티롤주 그리고 이탈리아의 돌로미티 산악이다. 그중 최근 한국 스키어에게 각광받는 곳은 프랑스알프스. 무려 16개의 스키빌리지를 운영하는 클럽메드 덕분이다. 이 중 두 개는 최근 개장한 뉴 빌리지로 미슐랭 3스타 셰프의 레시피로 조리한 음식과 푸아그라(거위간) 요리를 매일 제공할 만큼 파격적으로 호화롭다.
오늘은 트루아발레와 더불어 세계 최대 규모 스키장으로 이름난 파라디스키(Paradiski)와 거기서 올 시즌 개장한 레자크 파노라마(지난 연말 개장), 기존의 페제발랑드리 두 클럽 메드 빌리지를 소개한다. 파라디스키: 이곳은 이제르강이 흐르는 타랑테즈 계곡의 북사면의 스키장.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계곡 밑 도로를 따르면 자동차로 두 시간 이상 달려야 할 정도다. 그 계곡 위 산기슭(해발 1500m 이상) 전체가 스키장이다. 그 규모는 홈페이지에 큼지막하게 등장시킨 세 수치로 가늠된다. ‘425, 264, 3250’인데 트레일 총연장(km)과 합계, 최정상 고도(m)다. 그 이름은 ‘스키 파라다이스’(스키천국)에서 왔다. 100년도 더 된 산기슭 곳곳의 여러 스키마을이 공동 운영해 온 스키장 세 개(레자크, 페제발랑드리, 라 플라뉴)의 연합체로 한 장의 리프트권으로 모두 이용한다.
알프스 스키잉이 아시아권과 차별되는 것은 트레일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온 산기슭이 눈밭이다 보니 특별히 위험한 곳을 빼고는 어디로든 다운힐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숨 막힐 정도로 광대하고 아름다운 산경이다. 레자크의 아크2000 베이스에선 알프스산맥 최고봉 몽블랑과 그 옆에서 열두 시를 가리키는 시계의 시침처럼 곧추선 에귀유디미디 봉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세 번째는 1500m 이상의 고도차 다운힐이다. 파라디스키 최정상(3250m)에서 아크1600까지만 해도 고도차는 1650m에 이른다. 네 번째는 이 세 스키장을 자유롭게 오가는 광대함인데 264개 트레일은 7박 8일 스키 일정으로도 소화가 불가능한 수치. 그러니 파라디스키에서 겨울 휴가를 보낸다면 지금껏 평생토록 탄 것 이상으로 스키를 즐기게 될 것이다.
클럽메드: 고유의 올 인클루시브(All Inclusive·선불 방식)는 스키 빌리지에서도 마찬가지로 여기엔 스키 강습까지 포함됐다. 매일 정해진 시각에 베이스에는 프랑스국립스키학교(ESF) 공인강사가 대기한다. 강습은 초중고급 단계별로 진행되며 이들은 거대한 설산 스키잉 가이드 역할도 한다.
올 시즌 개장(아크1600)한 레자크 파노라마(아크1600 스키마을 소재)는 클럽메드 센세이션(트루아발레의 발토랑스 마을·2015년 개장)을 뛰어넘는 클럽메드 스키 빌리지의 최고봉. 객실마다 발코니를 두어 채광과 경관을 확보한 것이나 고급 바(1790 구어메이라운지)에서 칵테일과 맥주를 제공하는 식음료 서비스는 인상적이었다. 치즈 애호가라면 메인 식당(화이트스톤)에서 프랑스 최고의 치즈 맛보기에 여념 없을 것이다. 매일 선뵈는 다른 치즈로 식사가 즐거울 정도다. 와인 서비스도 훌륭하다. 프랑스 전역 대표 와인이 총망라됐고 가격도 ‘착한’ 편. 화창한 날엔 화이트스톤의 야외 테라스에선 알프스 고산의 싱그러운 공기와 햇볕에 노출된 채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즐긴다. 정면으로 펼쳐지는 타랑테즈 계곡의 설산 풍경 감상은 덤이다. 아이들의 흥미 유발 인테리어가 독특한 패밀리레스토랑은 클럽메드가 여기서 최초로 선보인 어트랙션이다.
클럽메드는 이웃한 페제발랑드리 스키마을(해발 1690m)에도 있다. 레자크 파노라마와 달리 고전풍의 이곳은 좀 더 안락함과 편안함을 주었다. 스키베이스에는 산장풍의 바와 식당이 줄지어 알프스 전통 스키마을의 여유로움도 맛볼 수 있었다. 거기서 최고의 별미는 치즈 퐁뒤. 로컬 맥주로 목 축이고 화이트와인 풀어 녹인 치즈에 빵을 적셔 호호 불어 가며 먹는 퐁뒤는 진정으로 프랑스알프스 스키 여행의 또 다른 진수였다.
거기선 라클레트(Raclette)도 잊지 마시길. 이건 피자 조각처럼 자른 두꺼운 우유치즈를 틀에 올려 양면을 오븐에 차례로 굽는데 고열로 녹은 표면의 치즈를 칼로 긁어 찐 감자와 함께 먹는 알프스 지방 전통 요리다. 클럽메드 페제발랑드리 이웃엔 로컬 치즈 상점도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발랑드리 농부가 직접 만든 치즈를 살 수 있다.
클럽메드의 야외 프로그램 중엔 스노슈잉(Snow shoeing·설피산책)도 있는데 버스로 근방 바누아즈 국립공원의 숲을 찾는다. 페제발랑드리와 라 플라뉴 스키장은 곤돌라로 오가는데 곤돌라 역은 클럽메드 바로 옆 스키베이스에 있다. 그래서 라 플라뉴에서 스키잉도 편리하다. 이 마을은 해발 500∼600m의 계곡 밑에서 산길로 이어진다. 가장 가까운 공항은 스위스 접경의 제네바. 버스로 두 시간 반 거리다.
● 여행정보
찾아가기: 인천∼제네바(항공)∼빌리지(버스·픽업서비스 제공).
클럽메드 빌리지: 이용객의 투숙 패턴은 대개 7박(일요일 체크인&아웃). 클럽메드코리아 ◇레자크 파노라마(7박 기준): 3월 최저가 292만6550원(1인·항공료 제외)
파라디스키: 스키 시즌은 4월 27일까지.
▼알프스 산악을 가꾼 진정한 올림피안 장클로드 킬리▼
프랑스는 겨울올림픽을 세 번이나 개최한 스키강국. 1924년 샤모니, 1968년 그르노블, 1992년 알베르빌 대회다. 개최지는 모두 프랑스알프스를 품고 있는 동남부의 사부아주. 그런데 클럽메드 레자크 파노라마와 페제발랑드리를 품은 파라디스키는 1992년 알베르빌 겨울올림픽의 유산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공동조직위원장으로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끈 장클로드 킬리(75)의 작품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13일간’(13 jours En France·한글 제목 ‘하얀 연인들’)이란 그르노블 겨울올림픽 다큐 영화 주인공. 그 대회에서 알파인스키 3관왕의 위업을 달성한 당대 최고의 스키 영웅이다.
그는 알베르빌 대회가 유치(1986년)되자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아 프랑스알프스 지역 스키장 현대화를 진두지휘 했다. 겨울올림픽을 통해 알프스 최고의 스키 휴양지로 환골탈태시키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그는 경기장으로 타랑테즈 계곡 9개 스키장을 지정했다. 그리곤 이 계곡에 고속철도를 끌어들였다. 지금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브뤼셀에서 몇 시간 만에 여길 찾을 수 있는 건 그 덕분. 해발 1600∼2000m 고지마을로 통하는 도로도 새로 놓았다. 동시에 스키장과 마을의 연합을 설득했다. 세 계곡마을을 합친 트루아발레, 세 스키장을 뭉뚱그린 파라디스키, 동떨어진 두 마을을 이은 ‘에스파스 킬리’는 그렇게 탄생했다.
결과는 놀랍다. 철도 도로 인프라에 리프트 시스템 현대화에 힘입어 거금의 투자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방문객 증가와 숙박업소 증가는 물론이다. 그는 진정한 올림피안이자 가장 존경받는 올림픽조직위원장이다. 올림픽을 통해 알프스 산악 오지에 ‘지속가능한 발전’의 기틀을 다져서다. 그리고 그거야말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 최고의 가치로 삼는 ‘올림픽유산(Olympic Legacy)’. 평창 겨울올림픽의 명암은 이로 인해 더더욱 명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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