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때는 2월이건만, 봄기운 아직도 어이 더딘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7일 03시 00분


근촌 백관수 옥중 한시집 ‘동유록’


“정녕 때는 2월이건만(正當二月時)/봄기운 아직도 어이 더딘가(春色尙何遲)/3다다미 크기의 감방 창 아래에서(三疊幽窓下)/역시 나 홀로 모름이련가(也吾獨不知).”

2·8독립선언의 주역이었던 근촌 백관수(1889∼1961·사진)가 일본 도쿄의 감옥에서 대한 독립의 봄을 기다리며 지은 옥중 한시 ‘정녕 때는(正當)’이다. 백관수는 1919년 도쿄에서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고 학생 대표 11인의 한 사람으로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독립선언을 했다. 백관수는 이 사건으로 체포돼 1920년 3월 25일 출옥할 때까지 1년여 옥살이를 했다.

백관수가 당시 감옥에서 쓴 한시집 ‘동유록(東幽錄)’이 100년 만에 번역 출간됐다. 차남인 백순 박사(80·미국 버지니아 워싱턴대 교수)는 동유록에 실린 한시 71편을 우리말과 영어로 번역한 ‘동유록’(시산맥·1만 원)을 최근 발간했다. 백 박사는 시집 4권과 평론집 여러 권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백 박사의 해설에 따르면 백관수는 대한 독립의 열망을 한시에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 ‘부끄럽지 않은 마음’으로 표현했다.

“대륙 동방의 땅(大陸東之部)/무궁화 반만년의 봄이 오겠고(槿花半萬春).”(‘대륙’에서)

“이 충성스러운 마음과 저 의로운 가슴 어찌 다르리오(此忠彼義何由別)/천년 세월에도 나라 사랑하는 인물 함께 깨치리(千載共醒愛國人).”(‘일백 번 죽음의 각오’에서)

백관수가 시에 표현한 봄은 반만년의 찬란한 역사를 간직한 한국이 독립하는 봄이고, 백관수는 그런 봄이 반드시 도래한다고 확신하는 한편 충의로운 나라 사랑으로 봄을 열망하고 있다고 백 박사는 설명했다. 백 박사는 “이런 마음이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45년 광복의 한 디딤돌이 됐으리라 본다”고 설명했다.

옥중의 백관수는 “청산의 두 친구 감방 찾아 와서(靑山二友訪幽居)/은근히 알려 주네 우리의 옳은 뜻 사라지지 않고(袖示慇懃意不疎)”(‘청산의 두 친구·靑山二友’에서)라며 2·8독립선언이 불씨가 돼 한국 전역에 독립운동이 번지기를 열망했다.

감옥 안에서 연말을 보내면서도 독립을 향한 일편단심은 그대로였다. “문 위에 달은 소나무 오랑캐 풍속이라고(飾松門戶看夷俗)/고향 산 폭죽은 내 나라 풍속이라 여겨지네(爆竹鄕山思國風)/많은 근심으로 잠 못 이루는 외로운 거처(耿耿不眠獨居處)/외로운 등불만 일편단심 마음 붉게 비추이네(孤燈惟照片心紅).”(‘섣달 그믐날 밤·除夜’에서)

조선 독립 문제를 다루지 않은 파리강화회의 소식을 전해 들은 심경도 한시에 표현됐다.

“소식 들었네 강화조약이(聞道講和約)/근래 이루어지고 어떠한 것이 이루어졌는지(近成何所成)/남들에게는 이로운데 우리에게는 이롭기 어려워(利人難利我)/패권 싸움과 영토 싸움이네(爭覇又爭城).”(‘강화조약3’에서)

그러나 2·8독립선언의 대의를 굳게 믿으며 마음을 다졌다.

“만약 스스로 후회한 바를 말한다면(若言所自悔)/오로지 과업을 이루지 못함이요(惟業不擧)/또 잘못함을 말한다면(又言所誤)/형세가 따르지 못함이라(勢不與).”(‘자위가·自慰歌’)

2·8독립선언이 자유와 정의에 근거를 둔 운동이라는 확신도 “자유 원래 가치가 있고(自由元有價)/정의 본래 치우치니 않네(正義是無偏)”라고 읊었다.

백관수는 출옥 뒤 1924년 메이지대를 졸업했고, 1927년 하와이에서 열린 세계기독교청년연합회 주최 제2차 태평양회의에 한민족 대표로 참석했다. 1937년 동아일보 사장에 취임했으나 일제의 강압에도 끝내 폐간계에 도장을 찍지 않다가 종로경찰서에 수감되기도 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에 당선돼 헌법 및 정부조직법 기초위원으로 일했다. 1950년 6·25전쟁 때 납북됐으며, 1961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근촌 백관수#동유록#2·8독립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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