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1741∼1793). 18세기 최고의 문장가. 박제가의 절친한 벗. 서얼 출신으로, 조선이 아닌 중국에서 먼저 인정받은 실력파다.
고전학자인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번역한 ‘열여덟 살 이덕무’(민음사·1만5000원·사진)가 출간됐다. 서울 성동구 한양대 연구실에서 26일 만난 정 교수는 “열여덟 살부터 스물세 살까지 이덕무의 글을 묶은 책”이라며 “한없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청년의 글에 여러 번 정신이 아득해졌다”고 했다. 책에는 결연한 자기 다짐 격인 ‘무인편’, 세월과 정신을 아껴 소중하게 쓰자는 ‘세정석담’, 인생에서 거쳐야 할 여덟 단계를 정리한 ‘적언찬’, 어린 누이에게 건네는 조언인 ‘매훈’까지 모두 네 편의 글이 담겼다.
“맑고 섬세한 이덕무의 심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글을 번역하며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덕무는 ‘내 허물 듣기를 음악소리 듣는 듯이 하고, 허물 고치기를 도적을 다스리듯 한다’(무인편 ‘허물’) ‘처음 사귈 때는 걸핏하면 지기라 하더니, 사귐이 조금만 성글어지면 툭하면 절교를 말한다. 어찌 이다지도 경박하고 조급하단 말인가’(세정석담 ‘사귐의 도리’)라고 썼다.
이덕무는 평생 생활고에 시달렸다. 어머니와 누이를 폐병으로 잃었고, 자신도 영양실조로 인한 병에 걸려 세상을 등졌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는 끝까지 성찰했다. 정 교수는 “신분 차별의 서러움을 울분으로 토해낸 박제가와 달리 이덕무는 평생 자기 절제를 잃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에는 응축된 슬픔이 한 자락 깔려 있다”고 했다.
“시간에 휘둘려 한순간도 자신으로 살지 못하는 현대인이 적지 않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대학 진학을, 그 이후에는 취업과 승진을 목표로 고속질주합니다. 그러다 보면 나 자신과 대면하기 두려워지죠. 이덕무처럼 평생은 아니더라도 한 번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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