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무작정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탈출을 꿈꾸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마음은 최대한 멀리 떠나고 싶지만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처지를 생각하면 멀리 가긴 어렵다. 떠나고 싶지만 쉬고 싶기도 하다. 서울 도심엔 휴양지가 없을까, 생각한다. 머릿속엔 ‘호캉스’란 단어가 떠오른다. 호캉스란 ‘호텔’과 ‘바캉스’의 합성어로 도심 호텔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30대 후반인 기자는 지난 20일 퇴근 후 ‘호캉스’를 실행에 옮겼다. 홀로 보내는 ‘호캉스’니, ‘혼캉스’라고 해도 좋으리라. 이날 오후 8시쯤 마포구 도화동 소재 비즈니스 호텔 ‘신라스테이’에 도착했다. 신라스테이 마포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숙박 패키지라면서 ‘취향의 발견’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날 ‘취향의 발견’ 가격은 약 12만원이었다. 평균 수준의 연봉을 받는 직장인이라면 2달에 한 번 정도 용기를 낼 만한 ‘가격’이다. 오는 28일까지 판매되는 이 패키지는 Δ스탠더드 객실(1박) Δ바디판타지 바디 미스트 50ml 3종 세트(1개) Δ슈에무라 포어피니스트² 프레쉬 클렌징 오일 50ml (1개)로 구성됐다.
27층 스탠더드 더블룸 객실 문을 열었다. 22.8㎡(약 7평)의 방이 한눈에 들어왔다. 백색 도자기처럼 이불이 정갈하게 덮인 침대가 보였다. 침대 맞은편 벽엔 액정표시장치(LCD) TV가 걸렸다. TV 바로 오른쪽 공간에는 사각형 모양 책상이 놓였다. 책상 바로 왼쪽에는 어른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소파가 배치됐다.
기자는 소파에 가방을 던지고 침대로 직행했다. 턱 바로 밑까지 이불을 덮고 침대 안으로 파고들었다. 창 너머 일부 건물에는 불이 들어와 고즈넉한 풍경을 그렸다. 그리고 TV를 켰다. 종합격투기 선수들이 뒤엉키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침대에 누워 있으니 맹수 같은 선수들이 ‘사슴’처럼 보였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들은 ‘꾸지람’이 별일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하게 됐다. 고된 일상과 시공간이 분리된 이 기분, ‘호캉스’였다.
아무리 망중한을 보내더라도 목욕재계는 필수다. 욕실로 이동하니 짙은 회색의 바닥과 벽면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개인적으로 신라스테이 최고 경쟁력은 건물과 내부 공간에 ‘품격’을 부여하는 짙은 회색풍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패지키 구성품으로 지급된 바디 미스트를 손에 쥐었다. 미국에서 1초에 하나씩 판매 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제품이다. 바디 미스트 ‘프레시 화이트 머스크’를 팔목에 뿌렸다. 꽃향기가 욕실에 진동했다.
애인이 있었다면 선물용으로 딱 맞은 제품이다. 애인 없는 기자는 한동안 꽃향기만 느꼈다. 20·30 젊은 여성 투숙객이라면 ‘바디 미스트’를 패키지 최고 매력이라고 꼽았을 것이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방 안 온도 조절 장치가 작동되지 않았다. 당시 방안 온도는 25도, 추위를 잘 타는 기자는 한기를 느꼈다. 직원 응대와 서비스는 인상적이었다. 프론트 데스크에 연락해 “춥다”고 하니, 10분도 안 돼 라디에이터(열교환기)를 가져다줬다. “단잠을 이룬다”는 우렁찬 군가 가사가 떠올랐던 밤이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한 패키지 평은 다음과 같다. 직원 친절하고 위생 상태와 서비스 좋고 가격 적당하며 맛이 일정 수준 이상인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기분이었다. 아주 저렴하고 매우 특색 있는 ‘밤’을 원하는 고객이라도 다른 선택을 권한다.
마침 패키지 이름도 ‘취향의 발견’이다. 취향에 따라 호캉스 장소를 물색하면 될 일이다. 퇴근 후 직장인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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