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7년 275냥이던 서울 양반집, 1846년에는 1000냥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7일 03시 00분


김문경 日교토대 명예교수, 심포지엄서 가옥 매매문서 첫 공개

최근 일본 교토대에서 열린 ‘한국 고문헌의 세계’ 전시에서 공개한 금석집첩(金石集帖). 조선 영조 때 전국의 비문을 탁본해 편찬한 것이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해외한국학자료센터 제공
최근 일본 교토대에서 열린 ‘한국 고문헌의 세계’ 전시에서 공개한 금석집첩(金石集帖). 조선 영조 때 전국의 비문을 탁본해 편찬한 것이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해외한국학자료센터 제공
《조선 후기 서울 집값은 ‘장기적으로 우상향’ 했을까? 18세기 후반∼19세기 중반 서울의 집값 상승을 보여주는 희귀 문서가 최근 발견돼 주목된다. 김문경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67·쓰루미대 일본문학과 교수·사진)는 최근 교토대에서 열린 ‘가와이 문고’ 목록 간행 기념 심포지엄 ‘한국 고문헌의 세계’에서 가와이 문고에 포함된 조선시대 가옥 매매문서를 소개했다.》

이 매매문서들은 1777∼1846년 한성부(서울) 정선방 대묘동(현 종로3가 북쪽 종로구 봉익동)의 한 민가가 11차례 사고팔린 기록을 담고 있다. 이 민가는 기와집 14간(間)반과 초가집 3간, 빈터(空垈·공대) 30간으로 이뤄졌다. 서민들이 ‘초가삼간’에 살았던 것을 고려하면 중상층 양반이 살았던 꽤 으리으리한 집이다. 이 집은 1777년 275냥에 거래됐고, 1783년에도 같은 값이었다. 하지만 1798년에는 500냥에 팔렸다. 김 교수는 “문서상 건물 구성에 변동이 없어 서울 중심 땅값이 오른 결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일본 교토대 소장 매매명문(賣買明文·소유권 문서). 서울 사대문 안 중상층 양반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이는 한 집의 거래 이력을 담고 있다. 이 집은 1777년 275냥에 팔렸지만(왼쪽), 1821년에는 700냥에 거래됐고(가운데), 1846년에는 1000냥으로 올랐다(오른쪽).
일본 교토대 소장 매매명문(賣買明文·소유권 문서). 서울 사대문 안 중상층 양반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이는 한 집의 거래 이력을 담고 있다. 이 집은 1777년 275냥에 팔렸지만(왼쪽), 1821년에는 700냥에 거래됐고(가운데), 1846년에는 1000냥으로 올랐다(오른쪽).
초가집을 헐고 기와집을 늘리는 ‘부분 재건축’이나 증축이 이뤄지기도 했다. 1816년 매매문서에는 초가집 3간이 사라지는 대신에 기와집이 18간으로 늘었다. 집값도 600냥(1816년), 700냥(1821년) 등 단계적으로 올랐다.

문서상 마지막 거래도 흥미롭다. 우치홍(禹治洪)이라는 인물은 1845년 750냥에 이 집을 샀다가 기와집 3간을 증축한 뒤 이듬해인 1846년 무려 1000냥에 팔았다. 김 교수는 “1년 만에 큰 이문을 남기고 집을 되판 건 부동산 투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적어도 이 집을 기준으로 보면 근로자의 임금 상승이 집값 상승을 따라잡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성호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에 따르면 학계의 기존 연구는 1780년대 날품팔이(日雇·일고)의 품삯은 은으로 약 1.06g이었고, 1840년대에는 약 1.34g으로 올랐다고 본다. 같은 기간 은 1냥(37.5g)과 상평통보 1냥의 교환 비율은 1 대 4에서 1 대 4.75로 변했다. 은 대비 동전 화폐의 가치가 하락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추정하면 1780년대 날품팔이가 이 집(275냥)을 사려면 2433일(약 6년 8개월)치 임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 1840년대에 이 집값(1000냥)을 모으려면 5882일(약 16년 1개월)치 임금이 필요했다. 임금이 다소 오르긴 했지만 화폐 가치의 하락과 지가 상승, 재건축 등으로 인해 집값 상승이 더 컸던 셈이다.

물론 사례 하나로 당시 주택 가격 변화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고문헌 전문가인 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서연구실장은 “서울은 지방 출신 관료들이 세를 사는 경우가 많아 오늘날처럼 상업적 가옥 매매가 이뤄졌다”며 “서울의 주택 거래를, 그것도 수십 년간 누적해 보여주는 문서는 아마도 이 자료가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해외한국학자료센터(센터장 정우봉 교수)와 일본 교토대가 공동 개최했다. 해외한국학자료센터는 2014년부터 일본 교토대 소장 한국 고문헌을 교토대와 공동 조사했고, 교토대 부속도서관에 있는 ‘가와이 문고’의 전모를 밝혔다. 이 문고는 일본의 조선 경제사 학자인 가와이 히로타미(河合弘民·1872∼1918) 박사가 수집한 자료다. 최근에는 목록집을 우리말과 일본어로 각각 간행했고, 심포지엄과 함께 귀중한 한국 고문헌 공개 전시도 3일까지 교토대에서 열렸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조선 후기 집값#가와이 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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