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의연했던 국내 맥주업계의 뒤통수를 느닷없이 가격한 사람은 다니엘 튜더라는 영국인입니다. 우리 맥주 맛이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못하다는 그의 충격적인 말에 업계는 물론이고 국민들의 자존심까지 상한 것이지요. 못사는 북한 사람들이 더 맛있는 맥주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에 반신반의 하면서도, 맥주에 소주를 섞어야 비로소 술맛이 완성된다고 믿는 주당들의 분노까지 더해져 일파만파가 되었습니다. 오죽하면 화려하고 다양한 기술로 ‘소폭’을 제조하는 한 아주머니의 동영상이 인기를 끌었을까요. 대량으로 공장 맥주를 만드는 국내 업계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미 ‘낙인 효과’로 의문의 일패를 당한 뒤입니다.
맥주 맛이 없기로는 우리나라와 미국은 오십보백보입니다. 영화 ‘그랜 토리노’에서 주인공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캔맥주를 수도 없이 마시면서 무료한 하루를 보냅니다. 맥주 맛만큼이나 밍밍한 노후인데 만약 그가 에일 맥주 혹은 사무엘 아담스 같은 독특한 라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면 영화는 어색했을 겁니다. 그런 맥주라면 미래지향적이고 트렌디한 노인이 되기 때문이지요.
국내에서 다니엘 튜더보다 먼저 맥주전도사를 자처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국전쟁과 영국군 참전에 관련한 저서로 유명한 영국의 앤드류 새먼 기자입니다. 당시 그는 맥주에 발효된 신 김치를 넣어 마시면 맛이 한결 좋아진다고 하더군요. “별 싱거운 양반 다 있군!” 하면서도 실제 그렇게 마셔보니 색다른 맛이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시나브로 맥주의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해외여행을 가면 그 나라 특유의 맥주를 맛보는 것은 기본이고, 일본의 경우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스낵코너로 달려가 시원한 생맥주 한 컵으로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나 일본이나 다 같은 라거 스타일인데 왜 맛 차이가 나는지 당시는 요령부득이었지요. 같은 고시히카리 쌀로 지은 식당 밥맛 차이처럼 말입니다.
최근 마이크로 브루어리, 즉 소규모 맥주공장에서 만든 수제맥주(크래프트 비어)의 열풍이 대단합니다. 공장식 대량 생산 라거 스타일에서 소규모 수제 에일 스타일로 젊은 소비자들의 입맛이 바뀌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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