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격동의 시기를 은유한 ‘바보 예수’로 잘 알려진 화가 김병종(66·사진)이 개인전을 연다. 14일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이번 전시 주제는 ‘송화분분(松花粉粉)’. 봄을 맞아 대기에 분분히 날리는 송홧가루를 담아낸 회화 등 신작 30여 점을 공개한다.
12일 전화로 만난 김 작가는 이번 작품이 “유년의 기억을 소환해낸 것”이라고 했다.
“요즘 회색 도시의 분위기와 달리 유년 시절은 대기의 청량감이 높았고, 낙락장송도 많았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연과 하나가 된 경험을 담고자 했습니다.”
어린 시절 봄날이면 “노란 구름 떼가 일어나는 것처럼 송홧가루가 휘날리는 광경을 바라보곤 했”던 만큼, 이번 작품에서 색채에 신경을 썼다. 특히 노란색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전통 동양화는 먹이 중심이 되고 색은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김 작가는 “이번에 ‘애기똥풀’ 색을 공부하며 탐미적인 부분을 알아가게 된 것이 소득”이라며 “먹과 색을 동등한 위치에 놓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김 작가의 이력에 비하면 이번 작품들은 다소 편안하면서도 가벼워 보인다. 과거 그는 1980년대 교정에서 마주친 격렬한 집회 속 최루탄과 화염병을 보고 눈물 흘리는 ‘바보 예수’를 그려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생명의 노래’는 연탄가스에 중독돼 생사를 넘나든 경험을 담는 등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이런 의견에 작가는 “30년 세월이 지나니 자연스레 작고 사소한 것들의 아름다움에 집중하게 된 것 같다”며 “대작이 많고 그 뼈대를 이루는 먹을 중심으로 한 필획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교수였던 그는 지난해 정년퇴임 후 다시 전업 작가의 길을 걷는다. 비교적 관심을 받지 못하는 한국화의 위치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도 과제다. 그는 “작가도 전통의 아름답고 훌륭한 재료를 참신한 방식으로 제시해야 하고, 사회도 한국적 아름다움에 대한 확고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현대 한국화를 발전시키는 것은 국학 진흥 차원에서라도 연구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본 도쿄예술대의 일본화과는 일본적 미의식의 산실입니다. 중국 명문 미술대의 ‘국화과’도 중국적 미의식의 토대이고요. 우리도 작가와 정책이 양면에서 함께 노력을 해서 토대를 이뤄 가야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문학성을 좀 더 수용하고자 했다는 그는 새 책 ‘도시를 걷다’도 집필하고 있다. 서울과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 등을 서정적으로 풀어낸 시리즈 원고를 준비 중이다. 미술평론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문인이기도 한 김 작가는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중국회화연구’나 ‘화첩기행’ 등 여러 저서를 집필했다.
“준비 중인 책은 단순한 여행 가이드가 아닌 도시에 관한 명상을 담을 겁니다. 그림을 그리다 공허함이 찾아오면 글을 쓰고, 또다시 그림으로 돌아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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