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혜, 남동진 “목욕물로 상처 씻는… 고통받은 인간 모습 그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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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사건 다룬 연극 ‘고독한 목욕’ 연출 맡은 서지혜, 주역 맡은 남동진

연극 ‘고독한 목욕’의 서지혜 연출가(왼쪽)와 남동진 배우가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무대 앞에 서 있다. 두 사람은 “무대 위 소품은 단순한 편이지만, 꿈과 환상이 뒤섞여 혼란스러워하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무대효과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연극 ‘고독한 목욕’의 서지혜 연출가(왼쪽)와 남동진 배우가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무대 앞에 서 있다. 두 사람은 “무대 위 소품은 단순한 편이지만, 꿈과 환상이 뒤섞여 혼란스러워하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무대효과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이후에도 계속된 피해자와 유족의 현재진행형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해 무대에 섰습니다.”

연극 ‘고독한 목욕’의 남동진 배우(47)와 서지혜 연출(40)은 작품 대본을 처음 접한 순간 느꼈던 감정이 ‘부담감’이었노라 털어놨다. 이념 갈등으로 벌어졌던 이 실제 사건은 지금도 고통받는 피해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 배우는 “아픈 역사를 무대에 옮기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워 처음엔 배역 제의를 거절했다”면서도 “대본을 계속 읽다 보니 오히려 이 아픔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맡기로 했다”고 밝혔다.

8일 막을 올린 뒤 ‘고독한 목욕’은 관객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13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만난 두 사람은 “작품은 표면적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지만,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슬픔”이라며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립극단이 올해 첫 창작극으로 선보인 ‘고독한 목욕’이 소재로 삼은 인혁당 사건은 1960, 70년대가 배경. 인혁당 당원이란 누명을 쓰고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가 내려진 뒤 이튿날 새벽 사형을 당한 희생자에게 초점을 맞췄다. 국가의 거대한 폭력 앞에 무너져버린 일상을 담으려 애썼다.

준비 과정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사건을 다룬 책과 자료를 읽고 치밀하게 공부했지만, 조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여건상 실제 피해자나 유족을 만날 수도 없었다.

서 연출은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쉽사리 접근할 순 없었지만 ‘예술인들이 이 이야기를 다루려 하는 점을 높이 산다’는 답변을 전해 듣고 힘이 났다”고 했다. 남 배우도 “뵙진 못했어도 ‘나중에 꼭 작품을 보러 오시면 좋겠다’는 배우로서의 바람을 전했다”고 밝혔다.

극의 제목에는 치유와 고통의 의미를 동시에 녹여냈다고 한다. 남 배우는 “고문으로 고통받은 아버지를 떠올리며 상처를 목욕물로 닦아 치유하지만, 상처가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장면은 유가족의 계속되는 고통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서 연출도 “고문, 꿈, 환상 등의 파편화된 기억으로 혼란스러워하는 한 인간의 모습에도 치유와 고통이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고독한 목욕’은 제55회 동아연극상에서 ‘유인촌신인연기상’을 수상한 남 배우와 ‘작품상’을 수상한 서 연출이 손잡고 내놓은 올해 첫 작품이기도 하다. 서 연출은 “수상 뒤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처럼 주변에서 절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제 마음가짐도 무거워져 겸손한 마음으로 사회에 필요한 목소리를 내려 한다”고 했다. 남 배우는 “나이를 먹었어도 권위 있는 신인연기상을 받아 새롭게 출발점에 선 기분”이라고 말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고독한 목욕#서지혜#남동진#인혁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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