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이후에도 계속된 피해자와 유족의 현재진행형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해 무대에 섰습니다.”
연극 ‘고독한 목욕’의 남동진 배우(47)와 서지혜 연출(40)은 작품 대본을 처음 접한 순간 느꼈던 감정이 ‘부담감’이었노라 털어놨다. 이념 갈등으로 벌어졌던 이 실제 사건은 지금도 고통받는 피해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 배우는 “아픈 역사를 무대에 옮기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워 처음엔 배역 제의를 거절했다”면서도 “대본을 계속 읽다 보니 오히려 이 아픔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맡기로 했다”고 밝혔다.
8일 막을 올린 뒤 ‘고독한 목욕’은 관객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13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만난 두 사람은 “작품은 표면적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지만,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슬픔”이라며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립극단이 올해 첫 창작극으로 선보인 ‘고독한 목욕’이 소재로 삼은 인혁당 사건은 1960, 70년대가 배경. 인혁당 당원이란 누명을 쓰고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가 내려진 뒤 이튿날 새벽 사형을 당한 희생자에게 초점을 맞췄다. 국가의 거대한 폭력 앞에 무너져버린 일상을 담으려 애썼다.
준비 과정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사건을 다룬 책과 자료를 읽고 치밀하게 공부했지만, 조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여건상 실제 피해자나 유족을 만날 수도 없었다.
서 연출은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쉽사리 접근할 순 없었지만 ‘예술인들이 이 이야기를 다루려 하는 점을 높이 산다’는 답변을 전해 듣고 힘이 났다”고 했다. 남 배우도 “뵙진 못했어도 ‘나중에 꼭 작품을 보러 오시면 좋겠다’는 배우로서의 바람을 전했다”고 밝혔다.
극의 제목에는 치유와 고통의 의미를 동시에 녹여냈다고 한다. 남 배우는 “고문으로 고통받은 아버지를 떠올리며 상처를 목욕물로 닦아 치유하지만, 상처가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장면은 유가족의 계속되는 고통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서 연출도 “고문, 꿈, 환상 등의 파편화된 기억으로 혼란스러워하는 한 인간의 모습에도 치유와 고통이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고독한 목욕’은 제55회 동아연극상에서 ‘유인촌신인연기상’을 수상한 남 배우와 ‘작품상’을 수상한 서 연출이 손잡고 내놓은 올해 첫 작품이기도 하다. 서 연출은 “수상 뒤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처럼 주변에서 절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제 마음가짐도 무거워져 겸손한 마음으로 사회에 필요한 목소리를 내려 한다”고 했다. 남 배우는 “나이를 먹었어도 권위 있는 신인연기상을 받아 새롭게 출발점에 선 기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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