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콘텐츠 속 왜곡된 性관념… 美 힙합문화 무비판적 수용한 탓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7일 03시 00분


잇단 일탈행동에 비판 목소리 높아
뮤비-가사 여성의 성적 대상화 심각… 힙합계선 여성혐오 논란 끊임없어

그룹 ‘위너’의 송민호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곡 ‘아낙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가요계에서는 여성 혐오나 성역할 고정관념이 여전히 녹아있는 케이팝 콘텐츠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유튜브 화면 캡처
그룹 ‘위너’의 송민호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곡 ‘아낙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가요계에서는 여성 혐오나 성역할 고정관념이 여전히 녹아있는 케이팝 콘텐츠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유튜브 화면 캡처
가수 승리, 정준영 사태로 왜곡된 성 관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연예계에서는 특정 구성원의 일탈로 치부하기에 앞서 한류와 케이팝 콘텐츠에 만연한 부도덕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뮤직비디오와 가사에 여성 혐오, 성적 대상화, 성 역할 고정 관념이 범람한다는 지적이 있다.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은 “송민호의 ‘아낙네’ 등 여러 뮤직비디오에서 성공한 남자는 노출이 심한 여성들 사이를 누비다 한 명을 간택하는 식으로 묘사된다”며 “일부 창작자의 성폭력 불감증이 녹아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4년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위너’의 멤버로 데뷔한 송민호는 이듬해 ‘쇼미더머니4’에 출연해 “MINO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 하는 랩을 해 각계의 비난을 받고 사과했다. 하지만 결국 준우승을 차지했고 ‘위너’의 멤버로 활동을 이어갔다. 2017년에는 아이돌 그룹 ‘빅스’의 라비가 솔로 곡 ‘BOMB’의 뮤직비디오에서 여성 혐오와 성적 대상화 논란이 일자 사과하고 해당 부분을 삭제한 바 있다.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국내 힙합에서도 여성 혐오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말에는 산이의 ‘FEMINIST’에 대해 페미니즘을 비꼬는 내용을 다룬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래퍼 블랙넛, 빌스택스에게도 여성 혐오 가사 논란이 따라붙었다.

이런 배경에는 미국 힙합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웹진 ‘리드머’의 강일권 편집장은 “돈만 보고 남자에게 접근하는 여자들을 비난하는 일명 ‘골드 디거(gold digger)’ 서사, 순종적 여성상을 찬송하는 내용이 국내 힙합에 이식되며 ‘김치녀’ ‘된장녀’ ‘꽃뱀’ 서사와 페미니스트를 비꼬는 내용으로 확장됐다”고 비판했다. 강 편집장은 “뿌리 깊은 여성 혐오 가사는 저항음악으로서의 힙합이 지닌 가치와 극단적으로 대척되는 지점이다. 오히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런 표현을 쓰는 래퍼들에 대한 보이콧 운동이 근래 활발하다. 국내처럼 기획사가 대변인으로서 ‘사실 무근’ ‘법적 대응’이란 성명을 내놓으며 큰소리치기 전에 아티스트가 먼저 공개 사과하는 일이 일반적이다”고 했다.

남성 가수만의 문제는 아니다. 성 역할 고정관념이나 성적 대상화를 담은 콘텐츠는 여성 가수를 통해 나오기도 한다. 박준우 평론가는 최근까지도 신인 여성 그룹들이 데뷔 때부터 안무, 의상, 뮤직비디오에서 짧은 치마와 교복 등 성적 대상화 여지가 있는 고정적 모습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고 했다. 김윤하 평론가도 “걸그룹이라는 존재 자체가 여성의 성적 대상화 혐의를 벗기 힘든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부터 더욱 깊게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투 운동으로 사회 전반에 성 인지 감수성이 높아졌지만 여성을 도구로 객체화하고 존중하지 않는 문화가 여전하다”며 “왜곡된 성 관념 등을 방조한 기획사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임희윤 imi@donga.com·신규진 기자
#여성 혐오#힙합문화#성 역할 고정 관념#여혐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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