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무에게 가는 길은/다른 나무에게도 이르게 하니?/마침내/모든 아름다운 나무에 닿게도 하니?”
27일 저녁 서울 중구 주한 영국대사관저 1층 응접실. 외국인 30여 명이 ‘숲’을 낭송하는 최정례 시인(64)의 목소리에 가만히 귀를 열었다. 대형 화면 위로는 번역시 ‘포리스트(Forest)’가 흘렀다. 외교 사절의 문학 모임인 서울문학회의 48번째 강연이다.
“고저스(gorgeous), 어도러블(adorable), 뷰티풀(beautiful)…. ‘아름다운’을 대신할 단어로 결국 얼티밋(ultimate)을 골랐어요. 덕분에 시가 더 깊고 풍부해진 것 같습니다.”
낭송을 마친 최 시인이 설명했다. 서울문학회는 2006년 한국문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야코브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가 회장을,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이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동안 황석영 신경숙 김연수 한강 소설가 등이 초청됐다. 이날 자리에는 영국 스웨덴 스페인 라트비아 대사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얼룩덜룩’을 ‘지브라 라인스(Zebra Lines)’로 바꾼 게 신의 한 수였죠. 다리에 ‘쥐가 났다’는 표현을 영국인 번역가가 ‘쥐가 다리를 기어 다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일어났다’고 옮겼답니다.”
최 시인이 번역 후일담을 이야기하자 곳곳에서 폭소가 터졌다. 시인은 이날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영혼 박물관’ 등 6편의 시를 낭송했다. 청중이 외국인인 만큼 번역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작품을 추렸다. 2011년 자신의 시선집 ‘순간들(Instances)’을 공동 번역해 펴낸 최 시인은 “해당 작가의 옷을 입고 말을 흉내 내면서 사랑하는 게 번역”이라며 “해외에 나가면 모든 단어가 새롭고 시적으로 느껴져 언어적 상상력이 풍부해진다”고 했다. 한국 산문시의 세계를 엿본 회원들이 질문을 쏟아냈다.
“해외에서 쓴 시는 기발한데 한국에서 쓴 작품은 왜 진지한가요?”(파트리크 에베르 주한 캐나다대사관 참사관)
“해외 시인들과 나눈 교감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
최 시인의 답변을 메모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 대사는 “최정례 시인의 시로 인해 현실이 초현실로 바뀌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고 했다. 김사인 원장은 “일상어와 시어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최 시인의 작품을 소개하게 돼 기쁘다”며 “한국은 시인 2만 명이 활동할 정도로 시 창작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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