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년 넘은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국보 승격…가장 오래된 사리 공예품

  • 뉴스1
  • 입력 2019년 4월 1일 11시 59분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 등 3건 보물 지정예고

보물 제1767호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일괄. 왼쪽부터 청동제사리합, 은제사리호, 금제사리병.(문화재청 제공)
보물 제1767호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일괄. 왼쪽부터 청동제사리합, 은제사리호, 금제사리병.(문화재청 제공)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문화재청 제공)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문화재청 제공)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리(舍利) 공예품인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가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577년에 만들어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리 공예품인 보물 제1767호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일괄’을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로 명칭을 변경해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고 1일 밝혔다.

또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 ‘김천 직지사 괘불도’ 등 조선 시대 불화와 서책 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국보로 승격 예고된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는 2007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백제 왕실 사찰인 왕흥사터의 목탑지(木塔址)에서 발굴한 유물로, 만든지 1400년이 넘은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사리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왕흥사는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에 창건된 백제 왕실 사찰로, 삼국사기에 창건 기록이 남아 있다.

출토 당시 금당(金堂, 대웅전) 앞 목탑지의 사리공(사리기를 넣은 네모난 구멍)에서 진흙 속에 잠긴 채 발견됐다.

사리기는 겉에서부터 순서대로 청동제사리합-은제사리호-금제사리병 순의 3가지 용기로 구성돼 있다.

청동제사리합 겉면에 새겨진 명문(銘文)을 통해 577년 백제 27대 왕인 위덕왕이 죽은 왕자의 명복을 빌고자 만든 사실이 확인된다. 명문에는 ‘정유년(丁酉年, 577년) 2월 15일(二月 十五日)에 백제왕 창(百濟王 昌)이 죽은 왕자(王子)를 위하여 찰(刹)을 세우는데 2매(二枚)였던 사리가 장례지낼 때 신(神)의 조화로 3매(三枚)가 됐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공예적인 측면에서도 안정되고 세련된 형태, 세부 구조물을 주조하고 접합한 기법, 표면을 깎고 다듬는 기법 등에서 수준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특히, 단순하고 단아한 모습과 보주형(寶珠形) 꼭지, 그 주위를 장식한 연꽃문양 등은 525년(백제 성왕 3) 조성된 ‘공주 무령왕릉 출토 은제탁잔’과 639년(백제 무왕 40) 제작된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보물 제1991호)를 조형적으로 연결한 도상으로서 의의가 있다.

문화재청은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는 백제 왕실 공예품이라는 역사적·예술적 가치,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절대 연대를 가진 작품이라는 희소성과 뛰어난 작품성으로 우리나라 공예와 조형 예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아 국보로 지정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보물로 지정 예고된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는 1740년(영조 16)에 영산회상도, 제석도, 현왕도, 아미타불도와 함께 조성되어 대둔사에 봉안됐던 작품으로, 이 가운데 삼장보살도만 유일하게 남아 있다.

월륜, 치흠, 우평 등 18세기 경상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승들이 제작에 참여했으며 세로 238cm, 가로 279cm의 대규모 화면에 천장보살과 지지보살, 지장보살 등 세 보살의 모임을 묘사한 그림이다.

삼장보살도의 도상은 1661년에 간행된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이라는 경전에 근거한 것으로, 천장보살이 중생들을 구제하는 부처인 약사여래처럼 약호(약병)를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김천 직지사 괘불도’는 1803년(순조 3년)에 제작된 괘불로, 현재까지 알려진 19세기 괘불 중 시기가 가장 빠르고 규모도 가장 크다.

괘불 하단에 쓰인 화기(畵記)를 통해 직지사를 중심으로 경북 권역에서 활동한 제한을 비롯해 위전, 탄잠, 부첨, 신화 등 총 13명의 화승이 제작에 참여했음이 확인된다.

높이 12m 이상 되는 대형 불화임에도 불구하고 도상의 배치, 상·하축의 조형성, 입체감 있는 표현 등 여러 면에서 19세기 불화를 대표할 만큼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작품이다.

‘도은선생시집 권1~2’는 고려 말의 대표적인 문인인 도은(陶隱) 이숭인( 1347~1392)의 문집 5권 가운데 권1~2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금속활자로 간행한 것이다.

1406년(태종 6년) 태종(太宗)은 이숭인에게 이조판서를 추증(나라에 공로가 있는 벼슬아치가 죽은 뒤에 품계를 높여 주던 일)하고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린 후 그의 문집을 간행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에 따라 변계량(1369∼1430)이 편집하고 권근(1352∼1409, 고려 말 조선 초 문신)이 서문을 지어 간행한 것이 ‘도은선생시집’이다.

권근이 서문을 쓴 연도가 1406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조선 개국 이래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가 주조된 1403년에서 오래되지 않은 시기에 인출된 것으로 보이며 계미자본 인출 시 주로 주석의 글자로 사용된 중자(中字)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계미자는 활자의 크기에 따라 대자, 중자, 소자로 나뉜다.

문화재청은 국보로 승격 예고한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와 보물로 지정 예고한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 등 총 4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국보·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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