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항거한 의병장 척암(拓菴) 김도화(1825~1912)가 쓴 책을 찍은 목판이 귀국했다.지난달 문화재청은 을미의병 당시 안동에서 활약한 의병장 척암 ‘척암선생문집책판(拓菴先生文集冊板)’ 1장을 독일에서 구입, 국내로 들여왔다. 김현모 문화재청 차장은 11일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그리고 임정 수립 기념일인 오늘, 척암 김도하 선생 문집 목판의 고국 귀환을 축가하고 기념하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김도화 선생의 살아생전 글들을 모아 엮은 ‘척암선생문집’은 책판을 제각해 종이로 찍어내 세상에 소개됐다”고 소개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이 책판을 본 기억을 되살린 척암의 5대 종손 김도훈씨는 “약 50년 만에 봐서 매우 감격스럽다”며 “1000개 일부라도 찾아 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환수된 ‘척암선생문집책판’은 ‘척암선생문집’을 찍어낸 책판 1000여 장 중 하나다. 권9 중 23~24장에 해당한다. 가로 48.3㎝, 세로 19.1㎝, 두께 2.0㎝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월 국외 경매에 출품된 한국문화재 사전점검을 통해 독일에서 열린 작은 경매에서 ‘척암선생문집책판’을 발견했다. 당시 출품된 아시아 문화재 500여건 중 이 책판만 한국문화재였다. 오스트리아인이 오래 전부터 소장한 것으로, 재단은 유교책판을 전문적으로 연구·관리하고 있는 진흥원과 협의해 매입했다. 임노직 한국국학진흥원 자료부장은 “안동 출신 정재(定齋) 류치명의 문인, 을미의병 의병대장, 퇴계학파의 마지막 학자”라고 척암을 소개했다.
환수 책판에 대해서는 “권 9의 23면과 24면이 1페이지로 되어 있다”며 “내용은 ‘태극 도설’이란 제목의 그림과 글로 우주의 생성과 인간관계를 설명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척암의 손자 김헌주 등은 1917년 척암이 생전에 남긴 글을 모아 ‘척암선생문집’을 간행했다. 본집 39권 19책, 속집 13권 6책으로 구성됐다. 진흥원과 국립중앙도서관이 인쇄된 문집을 소장하고 있다. 20장만이 한국국학진흥원에서 관리되고 있다. 이번에 매입한 책판까지 합치면 총 21장이 전해지게 됐다. 진흥원에 소장된 ‘척암선생문집책판’은 2015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유교책판’의 일부다. 척암은 영남에서 활동한 조선 말기 학자이자 의병장이다. 한국 독립운동의 산실 임청각(臨淸閣) 문중의 사위로, 퇴계학통을 이어받아 학문에 힘쓰며 후진을 양성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을 계기로 을미의병이 촉발되자 안동통문(安東通文)을 각지로 보내고 1896년 1월 안동의진(安東義陣)의 결성을 결의했다. 같은해 3월, 2차 안동의진에서는 71세에 2대 의병장으로 추대돼 지휘부를 조직했다. 이후 격문을 발송해 의병 참여를 호소했다.
1896년 9월 안동의진이 해산하고 1905년 을사늑약을 거쳐 1910년 한·일 강제병합이 이뤄졌다. 이에 척암은 자택 대문에 ‘합방대반대지가(合邦大反對之家)‘라고 써 붙이고 상소를 올리는 등 글로써 일제 부당함을 호소했다. 그의 독립운동은 높이 평가돼 1983년 대한민국 건국포장, 1990년에는 대한민국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기록유산 전문기관으로 동일한 책판을 소장·관리하는 진흥원이 환수된 책판을 관리할 계획이다. 전문적인 관리와 연구도 이뤄질 예정이다. 임 진흥원 자료부장은 “국외 소유의 환수 노력이 궁중 유물 중심으로 되어있었다”며 “(이번 책판 환수로) 민간 기록 유산 환수도 함께 비중을 두고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온라인 게임회사 라이엇 게임즈가 책판 환수를 도왔다. 라이엇 게임즈는 재단과 함께 미국에 있던 조선 불화 ’석가삼존도‘, 프랑스 경매에 출품된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환수 등 국외 한국문화재 환수 사업,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복원 사업을 추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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