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어머니 김미래씨의 “너 최승희 춤 춰볼래?”라는 한 마디에 석예빈의 인생은 너무도 일찌감치 정해져버렸다. 석예빈은 “춤이라고 해서 아무 생각없이 하겠다고 했던 건데”하며 웃었다.
일본 현대무용의 선구자 이시이 바쿠를 사사한 최승희는 1946년 남편, 오빠와 함께 월북해 인생의 후반을 북한에서 보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자료는 대부분 북한과 일본에 있다. 석예빈은 최승희의 춤을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가죽을 꿰듯 힘들게 배워야 했다.
명창이 스승에게 판소리를 배우듯 석예빈도 그렇게 최승희 춤의 레퍼토리를 늘려갔다. 현재 석예빈이 추는 최승희 춤은 물동이춤, 초립동, 보살춤, 도라지춤, 쟁강춤, 진주무희 총 다섯 개다.
“평양에서 보니 민족무용(북에서는 조선무용이라고 부른다) 추는 사람들의 기본이 모두 최승희 춤이라고 하더라. 남북관계가 더 좋아지고 교류가 많아진다면 언젠가 북한에 있는 최승희 자료를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석예빈은 전통에 얽매이고 싶어 하지 않는 무용수다. ‘무용은 어렵다’, ‘한국무용은 지루하다’라는 불편한 시선도 수긍한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아직도 아름답고 재미있게만 봐달라는 건 무리”라고 했다.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이를 시대에 맞게 변형하고, (관객을)즐겁게 만들고, (사람들에게)알려야 한다는 얘기였다. 석예빈이 무용가이면서도 연기를 복수전공하는 이유도 무용과 연기를 융합해 더욱 발전된 무용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한국무용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대한 열정을 품은 그는 K-POP에도 주목했다. 방탄소년단의 노래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방탄소년단의 노래 ‘아이돌’에는 “얼쑤 좋다”, “지화자 좋다”가 들어있다. 안무에도 한국적인 춤사위가 비친다.
석예빈은 방탄소년단 ‘아이돌’의 음악에 맞춰 오고무를 새롭게 각색했다. 이번 공연에서도 ‘두드림(Do Dream)’이란 제목으로 선보인다.
“졸업 후에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대학로 같은 곳에서 연극, 뮤지컬처럼 장기 공연하는 무용작품을 꼭 만들어보고 싶어요.”
한국무용의 대중화와 세계화. 석예빈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다 보니 꿈만은 아닌 듯싶다. 여친 생일날 “우리 오늘 대학로 가서 끝내주는 무용 한 편 볼까?”할 날도 머지않을 것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