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 저널리즘의 핵심은 팩트체크” 시민 교육 힘 쏟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3일 03시 00분


[동아일보 100년맞이 기획 가짜뉴스와의 전쟁]
<하> EU의 ‘미디어 리터러시’ 현장

지난달 19일 벨기에 브뤼셀 시네마팰리스에서 열린 ‘2019 미디어 리터러시 콘퍼런스’에 ‘가짜뉴스’를 감시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려는 정부와 규제기관, 미디어 관계자들이 모였다. 이날 마리야 가브리엘 유럽연합(EU) 디지털경제 및 사회 
집행위원은 “디지털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도전 과제가 생겼다. 비판적인 분석능력과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시민 교육이 숙제”라고 
강조했다. EU는 매년 미디어 리터러시 주간을 운영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 제공
지난달 19일 벨기에 브뤼셀 시네마팰리스에서 열린 ‘2019 미디어 리터러시 콘퍼런스’에 ‘가짜뉴스’를 감시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려는 정부와 규제기관, 미디어 관계자들이 모였다. 이날 마리야 가브리엘 유럽연합(EU) 디지털경제 및 사회 집행위원은 “디지털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도전 과제가 생겼다. 비판적인 분석능력과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시민 교육이 숙제”라고 강조했다. EU는 매년 미디어 리터러시 주간을 운영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 제공
“비판적인 사고와 다양한 미디어가 당신을 전진시킵니다.”

지난달 19일 벨기에 브뤼셀 시네마팰리스에서 열린 ‘2019 미디어 리터러시 콘퍼런스’에서 상영된 동영상에 등장한 마지막 문구다. 리터러시는 책, 신문 등 기록물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얻고 관련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디지털 시대에선 쏟아지는 정보 가운데 가짜뉴스를 걸러내는 미디어 리터러시가 꼭 필요한 능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매년 미디어 리터러시 주간을 운영하고 있다. ‘가짜뉴스’를 감시하고 처벌하려는 정계와 규제기관, 언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관계자들이 한곳에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해법을 마련하는 자리다. 올해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시민 교육 차원에서 추진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마리야 가브리엘 EU 디지털경제 및 사회 집행위원은 개막사에서 “20세기 들어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문맹률이 떨어졌지만 디지털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도전 과제가 생겼다”며 “비판적인 분석 능력과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시민 교육이 숙제”라고 강조했다.

○ ‘가짜뉴스’ 체험으로 배우는 팩트체크 방법


이날 행사장에선 유럽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를 교육하는 단체에 대한 ‘미디어 리터러시 시상식’이 열렸다. 130개 단체 중 최종 심사에 오른 10개 팀에 3분간 자신들의 활동을 소개하는 발표 기회가 주어졌다.

최종 심사에 오른 라트비아팀은 인터넷을 처음 접하는 만 5∼8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미디어 교육을 시행하는 단체였다. 캠페인 구호는 ‘보이는 것을 자동으로 믿지 마라’. 프랑스팀은 만 12∼18세 100만 명과 재소자 600여 명을 대상으로 청소년에게 인기 높은 온라인 카툰에서 의견과 사실, 가짜와 진짜 뉴스를 구별하는 훈련과 토론을 진행했다. 북마케도니아팀은 고교생이 기자가 돼 신문을 발행하고 가짜뉴스를 가려내도록 했다. 스페인팀은 과학 분야의 잘못된 정보와 지식을 골라내게 만들었다.

최종 수상은 3개 팀에 돌아갔다. 아일랜드 ‘HTML 히어로’팀은 전국 3400개 학교의 초등학교 저학년(만 7∼9세)을 대상으로 온라인 뉴스와 광고에서 거짓을 가려내고 올바른 소통법을 교육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핀란드의 ‘미디어 미스테이크’팀은 방송사 보도국에서 매일 겪는 윤리 및 도덕 갈등과 가짜뉴스를 구별한 뒤 토론하게 했다. 벨기에 ‘미디어 매쉬업’팀은 만 12∼18세 청소년이 함께 모여 영상을 교묘히 편집해 직접 가짜뉴스를 만들어보고 토론하게 만들었다.


독일 미디어 리터러시 비영리기구 ‘거짓말 탐지기’는 기자, 교사, 학생, 심리학자 등이 직접 만든 교재로 학생들을 교육한다. 율리안 폰 레페르트비스마르크 거짓말탐지기 대표는 “교육 목표는 청소년들이 거짓 정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팩트(사실)의 중요성을 몸소 깨닫는 것”이라고 말했다.

○ 민관이 함께하는 가짜뉴스 방어 총력전


“20년 전 아날로그 세상에선 방송사와 취재원은 적었고 규제는 많았다. 정제된 정보가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 디지털 세상에선 다르다. 팩트체크가 저널리즘의 핵심이 됐다.”

벨기에 공영방송 RTBF의 장폴 필리포 사무총장은 “디지털 시대 저널리즘의 핵심은 투명성”이라며 “방송사는 콘텐츠 생산 기준을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우리 방송사는) 매년 스튜디오를 시청자들에게 개방하고 궁금증을 해소시켜 신뢰를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영방송은 시청자들이 적극적으로 미디어에 참여하고 시청자 교육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RTBF는 여러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용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영 중이라고 전했다. 필리포 사무총장은 “5월 말로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와 벨기에 총선에서 처음 투표하는 70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투표와 민주주의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리터러시 프로그램도 방영 중”이라고 전했다.

독일 RTL방송의 클라우스 그레베니흐 부대표도 “별도 검증팀을 꾸려 뉴스 방송 전 팩트체크를 한다. 기자 대상 팩트체크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라며 “광고가 편집권에 과도하게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광고와 콘텐츠를 구별하는 어린이용 미디어 리터러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인들도 팩트체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헬가 트뤼펠 유럽의회 의원은 “아날로그 시대에는 언론 자유가 중요했다. 독일에서는 모든 인터넷 규제가 해롭다고 여겼다”며 “그러나 현재는 (가짜뉴스의 폐해를 없앨) 적절한 규제 없이는 인터넷을 자유롭게 즐길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트뤼펠 의원은 “소외계층과 노인 대상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방법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이스북 뉴스피드의 테사 라이언스 매니저는 “페이스북은 최근 2년 동안 팩트체크팀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며 “이 팀의 역할은 가짜뉴스를 지우고 의심되는 정보는 뒤로 미루게 하며 정확한 정보를 더 많이 제공하는 세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오프라인 조직과 함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도 한다”고 말했다.

○ EU, 선거 앞두고 가짜뉴스 적발에 총력


EU는 다음 달로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가짜뉴스가 범람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EU 회의론’을 퍼뜨리려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세력들이 가짜뉴스를 대량으로 생산할 것으로 보고 벌써부터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최근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EU 외부에 반(反)유럽 세력이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와 여러 유럽의 선거 등에서 민주주의에 영향을 끼치려고 한다”고 경고했다. EU는 가짜뉴스 진원지로 러시아를 지목했다. 안드루스 안시프 EU 집행위원회 부의장은 “러시아가 잘못된 정보를 퍼뜨린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며 “서방 세계를 분열시키고 약화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EU는 2015년 가짜뉴스 대응팀 ‘이스트 스트랫컴 태스크포스(East StratCom Task Force)’를 출범시켰다. 15명으로 구성된 이 팀은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는 가짜뉴스를 정보의 바다에서 솎아내기 위해 웹사이트 ‘EU vs. Dis info(잘못된 정보)’를 운영하며 팩트체크를 하고 있다. 현재까지 5000건 이상의 가짜뉴스를 적발했다. 러시아 매체들이 ‘EU 집행위는 라트비아에 관심이 없으며 발트해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EU는 미국의 애완견일 뿐이다’ 등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보도를 했던 사례도 찾아내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EU는 지난달 ‘조기 경보 시스템’까지 마련했다. 이를 통해 외부 세력이 가짜뉴스로 선거에 개입하려고 할 때 28개 EU 회원국은 실시간으로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또 회원국들에 대해 팩트체커를 적극 지원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브뤼셀=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가짜뉴스#팩트체크#미디어 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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