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불교의 진리를 깨우친 성자인 나한(羅漢)들이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나한상은 부처나 보살상 같이 금으로 장식되거나 하지 않고 평범한 우리 인간처럼 친근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들의 은은한 미소를 보고 있으면 복잡한 현대사회, 특히 도시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치유된다.
이번 나들이에 참여한 나한들은 강원 영월군 창령사 터에서 발견된 오백나한상 중 88점이다. 이 나한상들은 고려시대 때 만들어져(12세기 추정) 조선시대 500여년을 땅속에 묻혀 있다가 2001년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역사를 갖고 있다.
이 나한상들은 지난해 국립춘천박물관에서도 전시를 통해 사람들과 만난 바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당시 전시를 관람객의 사랑과 전문가의 추천을 받은 ‘2018년의 전시’로 선정했다.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은 이전 전시를 새롭게 연출해 오는 6월13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전을 연다.
1부 전시 공간은 전시실 바닥을 옛 벽돌로 채우고, 그 위로 여러 개의 독립적인 좌대를 세워 창령사 나한상 32구를 배치해 연출했다. 2부 전시 공간은 스피커 700여개를 탑처럼 쌓아올려 그 사이에 나한상 29구를 함께 구성해 도시 빌딩숲 속에서 성찰하는 나한을 형상화했다.
김승영 작가는 29일 언론공개회에서 “기독교인인 제가 바라보는 부처님 말씀 등을 보여주면서 (서로 다름을) 화합하고, (현대미술과 문화유산인)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하는 것들을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란 걸 알 수 있다”며 “또한 도시인들이 가진 많은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다 싶어서 해인사에서 비질하는 소리를 녹음해 틀어놓기도 했다”고 말했다.
감출 수 없는 기쁨에 찬 얼굴과 두건을 뒤집어쓰고 평온함에 잠겨든 얼굴, 그리고 무거운 고개를 떨구고 무언가에 몰입한 얼굴들을 보며 우리 안에 있는 수많은 감정과 그 안의 순수한 자신을 저절로 들여다보게 된다. 또 빌딩숲처럼 높게 쌓인 스피커로부터 들리는 도시 일상의 소리 속에서 맑은 종소리를 나한과 함께 들으며 고요히 나 자신에 집중하며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우리의 문화유산은 아직까지 구닥다리같다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뜻 깊은 것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잘 보존해 후대에 잘 전승해야 하고, 그런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데에는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며 “문화유산과 현대미술의 협업 자체는 이미 다른 박물관에서도 이뤄진 완전히 새로운 작업은 아니지만, 개연성을 더욱 강화해 국민들이 문화유산을 즐길 수 있는데 도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여러 고민이 많은 시대인데, 나한을 보면서 고민이 덜해지면 좋겠다”며 “나한과 같이 현실을 뛰어넘는 용기를 가지고 사는 삶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오는 6월13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린다. 관람료는 성인 3000원, 학생 2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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