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과 용암이 그린 ‘비구상의 갤러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4일 03시 00분


여행|경기 연천|

2.5km에 달하는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임진강 주상절리 절벽과 수직 수평으로 교차된 띠가 특징인 클레의 ‘현재 그리고 여섯 개의 기준, 한계점’작품(부분·1929년).
2.5km에 달하는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임진강 주상절리 절벽과 수직 수평으로 교차된 띠가 특징인 클레의 ‘현재 그리고 여섯 개의 기준, 한계점’작품(부분·1929년).
경기 연천의 주상절리는 현대 추상회화의 시조이자 스위스 태생의 독일 화가인 파울 클레(1879∼1940)를 떠올리게 한다. 많은 사람들은 ‘연천’ 하면 군부대 또는 비무장지대(DMZ)를 머릿속에 그릴지 모른다. 하지만 연천은 ‘지질학 백화점’으로 불릴 만큼 많은 주상절리(단면 모양이 다각형 기둥으로 된 지형)가 널려 있다. 무려 약 50만 년 전에 형성된 기하학적 지형이다.

파울 클레의 작품 닮은 연천 주상절리

클레는 현대 미술 거장 중에서도 가장 지적이며 창의적인 미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자신이 보고 읽고 들었던 것을 바탕으로 자연의 재현에서 벗어나 선과 색채의 마술을 통해 추상미술의 세계를 추구했다. 그런데 연천에 와 보니 클레의 일부 작품은 혹시 이곳에서 영감을 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임진강 주상절리는 40m 높이의 수직 절벽이 임진강을 따라 약 2.5km에 걸쳐 뻗어 있다. 옛 문인들은 배를 타고 임진강 주상절리의 아름다움을 즐겼다고 한다. 노을이 질 때, 특히 가을의 오후에 절벽을 뒤덮고 있는 담쟁이가 붉게 물들 때 임진강 주상절리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임진적벽(臨津赤壁)’이라고도 불렸다. 클레의 작품 ‘현재 그리고 여섯 개의 기준, 한계점’(1929년)은 붉게 물든 임진강 주상절리와 흡사하다. 클레는 이집트의 나일강을 여행한 뒤 이 작품을 그렸다. 수직으로 이루어진 교차된 띠가 주상절리의 갈라진 틈과 같은 느낌을 준다.

용암이 급격히 식어 형성된 베개 모양의 현무암질층인 아우라지 베개용암과 클레의 ‘정적 동적 그러데이션’ 작품(부분·1923년).
용암이 급격히 식어 형성된 베개 모양의 현무암질층인 아우라지 베개용암과 클레의 ‘정적 동적 그러데이션’ 작품(부분·1923년).
두 갈래의 물이 합쳐지는 곳에 솟아 있는 ‘아우라지 베개용암’은 베개 수십 개를 쌓아놓은 것 같은 주상절리가 특징이다. 용암이 차가운 물과 만나 빠르게 식을 때 그 표면이 둥근 베개 모양으로 굳어서 생겼다. 클레의 작품 ‘정적 동적 그러데이션’(1923년)도 마치 다양한 색상의 베개를 쌓아올린 것 같이 보이는 그림이다.

20m 높이의 현무암 아래 아직 굳어지지 않은 하천 자갈층으로 이뤄진 백의리층과 클레의 ‘구조상의Ⅰ’작품(부분·1924년)은 아무렇게나 튀어나오고 그려진 듯한 구조가 닮았다.
20m 높이의 현무암 아래 아직 굳어지지 않은 하천 자갈층으로 이뤄진 백의리층과 클레의 ‘구조상의Ⅰ’작품(부분·1924년)은 아무렇게나 튀어나오고 그려진 듯한 구조가 닮았다.
임진강 주상절리와 아우라지 베개용암 모두 강 건너편에서만 볼 수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고문리의 ‘백의리층’은 바로 앞에서 주상절리를 보고 만질 수 있다. 약 20m의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 아래 아직 암석화되지 않은, 기하학적으로 여기저기 튀어나온 퇴적층이 분포하고 있다. 현재도 계속 바람과 비 등으로 침식돼 돌들이 떨어지곤 한다. 떨어져 내린 현무암은 철분이 많아 돌끼리 부딪치면 철과 철이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난다. 클레의 작품 ‘구조상의’(1924년)는 백의리층처럼 아무렇게나 튀어나온 주상절리 구조처럼 보인다.

높이 18m에 달하는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에서 쏟아지는 재인폭포.
높이 18m에 달하는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에서 쏟아지는 재인폭포.
재인폭포와 차탄천 주상절리, 좌상바위 등도 대표적인 한탄강 국가지질공원의 명소들이다. 클레의 작품뿐만 아니라 평소 좋아하던 추상화와 주상절리를 비교해 보면서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풍경과 그림을 느껴보는 것이 좋다.


구석기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주상절리 절벽을 성벽으로 이용하여 한쪽 성벽만 현무암으로 축조한 당포성.
주상절리 절벽을 성벽으로 이용하여 한쪽 성벽만 현무암으로 축조한 당포성.
3일부터 6일까지 연천에서는 ‘너도? 나도! 전곡리안’이라는 주제로 제27회 연천구석기축제가 전곡리 선사유적지 및 전곡읍 일원에서 열린다. 연천 전곡리 유적은 1978년 동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된 곳이다. 1979년부터 현재까지 20여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구석기 유물 8000여 점이 발견됐다.

축제에서는 구석기 문화 체험은 물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구석기 문화와 인류 진화과정 등을 정리해 놓은 전곡선사박물관까지 함께 볼 수 있는 학습형 축제다.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를 하고 놀이도 즐길 수 있어 인기가 높다. 대형 화덕에서 구워 먹는 구석기식 바비큐와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 탄자니아 등 세계 각국의 선사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전곡리안’(구석기인 복장으로 그들의 생활을 연기하는 사람)이 석기를 만들고 집을 짓고 바비큐를 해 먹기도 한다. 유적지를 활보하면서 구석기 시대를 살아가는 전곡리안들과 인증샷을 찍는 것도 축제의 재미다.

연곡에는 구석기 유물과 지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매달 4, 9, 14, 19, 24, 29일에 열리는 전곡 5일장에서는 다양한 먹을거리와 간식거리, 물품 등을 판매해 눈과 입이 즐겁다. 향긋한 허브향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허브빌리지에서는 꽃과 식물을 감상하며 휴식할 수 있다.

○ 여행정보

가는 법: 대부분의 관광지가 외곽에 있거나 거리가 떨어져 있어 자동차 이용 추천. 관광해설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많으니 미리 문의하는 것이 좋다. △연천 전곡리유적: 전곡읍 양연로 1510. 입장료 1000원. △전곡선사박물관: 전곡읍 평화로443번길 2. 입장료 없음. △숭의전지: 미산면 숭의전로 382-27 △당포성: 미산면 동이리 778 △재인폭포: 연천읍 부곡리 192 △아우라지 베개용암: 전곡읍 신답리 17-44 △임진강주상절리: 미산면 동이리 64-1 △백의리층: 연천읍 고문리 212 △허브빌리지: 왕징면 북삼로20번길 37. 입장료 성인 7000원.

맛집 △대호식당: 점심·저녁시간에는 현지 주민들로 가득 찰 정도로 인기 있는 식당이다. 푸짐하게 들어간 햄과 개운한 국물 맛이 특징인 찌개. 부대찌개 7000원, 동태찌개 8000원. 경기 연천군 신서면 연신로 1154. △한탄강오두막골: 보통 탕으로 먹는 가물치를 양념구이로 먹을 수 있다. 파와 후추향이 입맛을 돋운다. 다 먹은 뒤 밥을 볶아 먹어도 좋다. 가물치구이(1kg·3, 4인 기준) 4만5000원, 민물새우탕(1인) 9000원. 경기 연천군 청산면 청창로141번길 92.


감성+ △음악: ‘토카타와 푸가 d단조’ BWV565(바흐). 자유로운 토카타(전반부)에서 주상절리의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듯한 비정형성을, 엄격한 푸가(후반부)에서 기하학적인 구조미를 떠올릴 수 있다.(황장원 음악평론가) △영화: 고인돌가족(감독 브라이언 레번트). 애니메이션 원작으로 석기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기발하고 재미있게 담았다. 책: 산에는 꽃이 피네(글 윤동주 외·그림 파울 클레). 4월의 봄을 주제로 윤동주 김영랑 등 19명의 시를 모아 파울 클레의 그림으로 시상을 표현했다.

세대 포인트 △연인·신혼부부: 기괴한 모양의 절벽과 풍경을 배경으로 찍으면 인생샷. △중장년층: 한탄강과 임진강 주위의 트레킹 코스를 풍경과 함께 감상. △어린이가 있는 가족: 박물관, 유적을 돌고 5일장에 들러 먹을거리를 먹어 보자.
 
연천=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국내여행#연천#파울 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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