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서울 마포구 에스플렉스센터. 500여 명이 플래카드를 흔들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미취학 아동부터 20대까지, 5인조 아이돌 ‘비타민’의 공연을 보려 오전부터 줄을 서고 공연장에 입장했다. 그런데 비타민은 일반 아이돌과는 다른 점이 있다. 2015년 데뷔 당시 나이가 7∼11세. 일명 ‘키즈돌(키즈+아이돌)’이다.
요즘 키즈돌은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사이에서 말 그대로 우상(아이돌)이다. 약 5년 전부터 눈에 띄게 늘었는데 ‘비타민’ ‘리치걸’ ‘유쏘걸’ 등 팬덤까지 형성한 키즈돌이 부쩍 늘었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관객 김상미 씨(40·여)도 “9세 아이가 방탄소년단보다 비타민을 더 좋아한다”며 웃었다. ○ 열혈 팬에 해외공연 요청까지 들어와
특히 비타민은 인기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톱 키즈돌’. 지금까지 디지털 싱글 9곡을 냈는데 지난해 발표한 노래 ‘쎄쎄쎄’는 유튜브 조회수가 약 300만 건에 이른다. 레고사와 협업한 ‘레고 프렌즈 하트송’은 조회수가 무려 약 500만 건. 소속사인 ‘클레버TV’의 유용진 대표는 “1년 전만 해도 빈 좌석이 꽤 됐는데 요즘은 정원의 2배 이상이 몰린다”고 했다.
키즈돌은 2000년대 초 ‘선구자’ 격인 그룹 ‘량현량하’를 시작으로 ‘7공주’ 등 1세대를 거쳐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이 급증하며 인기가 대폭발했다. ‘유쏘걸’ ‘영기스트’를 기획한 정병석 스타캐슬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유튜브에서 초등학생 춤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키즈돌의 시장성이 확인됐다. 해마다 구독자가 20% 이상 늘고 있다”고 했다.
역시 이들의 주무대는 SNS다. 춤이나 노래, 뮤직비디오 영상만 올리는 게 아니다. ‘방학 일상’ ‘인싸(인사이더) 패션 꿀팁’ 등 생활형 콘텐츠도 인기다. 슬라임(액체괴물)이나 과자를 싸들고 찾아오는 열혈 팬도 적지 않다. 몇몇 키즈돌그룹은 중국 등 해외에서 공연 요청까지 들어오고 있다.
또래에겐 키즈돌 오디션도 화제다. 지난달 키즈돌 ‘블루민트’에 참여할 멤버 8명을 뽑는 데 100명 이상 몰렸다. 현장에는 갓 유아기를 지난 4세 아동부터 지방에서 온 지원자까지 있었다. 소속사 STC에이전시 관계자는 “오디션에 합격하면 2∼6개월 동안 주말을 이용해 서너 시간씩 트레이닝을 받는다”며 “기존 아이돌처럼 절박한 연습생 시절을 거쳐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또래 공감 노래…선의의 피해자 없게 주의
키즈돌은 나이만 아이돌과 다른 게 아니다. 노래나 스타일도 차별을 뒀다. 종종 춤이나 의상으로 선정성 논란을 겪을 일은 애당초 피한다. ‘나이대’에 맞는 이미지를 강조한다.
“매일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지루해, 지루해. 빙글빙글 쳇바퀴 돌아가듯 살아 따분해, 따분해. 월화수목금토일 매일 공부만 해.”(비타민 ‘쎄쎄쎄’에서)
노래 내용은 아무래도 순수하고 단순하다. 우정이나 풋사랑, 공부 스트레스 등 그들이 공감할 고민을 담는다. 반면 멤버들이 각각 노래나 춤, 외모 담당이 있는 건 기존 아이돌 공식을 따랐다. 그룹 콘셉트도 ‘걸크러쉬’나 ‘귀여움’ 등 다양한 편. 초등생에게 방송 댄스를 가르치는 박소라 강사는 “선정적인 아이돌 가사는 불편해 키즈돌 노래를 주로 튼다”며 “멜로디는 아이돌 수준인데 아이들의 관심사를 건전하게 다뤄 부모들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인성교육도 중요시한다. ‘블루민트’의 6주 트레이닝 커리큘럼에는 인문학 수업도 있다. 대학 교수를 초빙해 고전 등을 읽고 느낀 점을 토론하기도 한다. 기획사는 “최근 연예인 사건사고가 많아 인성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이 크다”고 했다.
키즈돌은 언제까지 활동할까. 보통 중학생이 되면 ‘졸업’이란 형식으로 활동을 마무리한다. ‘비타민’도 현재까지 졸업생 11명을 배출했다. 떠난 멤버들은 학업에 집중하거나 성인 기획사에서 모셔가기도 한다. 정 대표는 “앞으로 키즈돌은 아이돌이 되기 위한 중요한 관문이나 경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물론 핑크빛 기류만 흐르는 건 아니다. 데뷔한 지 1년도 안 돼 시장에서 사라진 키즈돌도 부지기수다. 일부 소속사가 제작비용을 부모에게 떠넘겨 갈등을 빚는 사건도 벌어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소속사라고 간판을 달았지만 실제로는 학원 수강생을 모집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귀띔했다. 9세 아들을 둔 이승진 씨(39)도 “SNS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월 100만 원의 수강료를 요구해 포기했다”고 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유년기에는 가족 친구와 어울리면서 사회화를 배운다. 지나친 스케줄과 대중의 관심으로 성장 과정이 왜곡되지 않도록 선을 지키면서 활동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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