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소설 ‘레스’의 퓰리처상 픽션 부문 수상은 미국 문단을 들썩이게 했다. 코맥 매카시 같은 무거운 주제를 선호하던 퓰리처가 읽는 내내 웃음 터지는 코믹 소설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런 퓰리처의 ‘깜짝 선택’은 소소한 이야기나 유머를 경시하는 비평의 권위적 태도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럴 때가 됐다”, “이런 소설을 더 보고 싶다”는 평단의 환영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2일 e메일로 만난 ‘레스’의 작가 앤드루 숀 그리어(49)는 “소소한 이야기의 힘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고 말했다.
“크고 진지한 주제의 소설은 읽는 사람에게 왕이나 정치인, 때론 살인자나 신을 쳐다보게 만들어요. 작은 이야기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과 주변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이야기했다.
“유럽 문학의 걸작인 프루스트의 책에선 평범한 디너파티, 오랜 정원 산책 외엔 별일이 일어나지 않죠.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에 관한 내용도 머리 위로 전투기가 날아가는 장면뿐이에요. 그럼에도 이 소설은 제가 아는 어떤 것보다 인간의 진실을 가장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의 소설 ‘레스’에서도 멋지거나 웅장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 레스는 실연의 아픔을 끌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을 겪는다. 그리어에게 ‘왜 그렇게 주인공을 힘들게 했느냐’고 물었다.
“하하. 세상엔 이보다 더 힘든 일이 많다는 건 인정하시죠? 그러나 제가 주인공에게 굴욕적인 경험을 차례차례 안겨준 건 사실이에요. 여기엔 아주 강한 이유가 있었죠. 저는 ‘기쁨’에 관한 책을 쓰고 싶었거든요.”
기쁨과 굴욕이 어떤 관계가 있다는 걸까?
“저도 처음엔 기쁨을 표현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만약 등장인물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린 뒤, 그걸 다시 하나하나 돌려준다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면 독자는 인물에 공감하고, 그와 함께 웃고, 때론 그를 향해 웃다가 마지막에 ‘행복 폭탄’을 맞게 되는 거죠.”
그리어의 유쾌한 유머는 굴욕적 상황에 처한 레스를 독자가 사랑하게 만드는 무기였다. 그는 “유머가 가혹한 비난이 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을 연결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책에서 레스를 절대 폄하하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화자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친절하죠. 제 책은 보잘것없는 사람에 대한 찬사이자 일종의 연애편지예요. 그 목소리 덕분에 저처럼 많은 사람들이 레스의 바보 같은 모습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의 유머가 마냥 즐겁고 기쁘기만 한 건 아니다. 문학 시상식을 ‘재능 없는 사람들의 닭싸움’이라거나, 프리랜서의 삶을 ‘따뜻하지만 다 덮어지지 않는 담요’라고 하는 등 날카로운 비유가 반짝였다. 사람이 언제 비참해지는지 너무 잘 아는 그리어에게 ‘당신은 냉소주의자인가?’를 물었다.
“저는 감상주의자라고 생각해요. 물론 세상의 모든 징후들이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고 있고, 세계가 점점 더 이상한 장소로 변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더 이상 친절하지 않다는 걸 느껴요. 그 점에서 저는 현실주의자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은 있다는 믿음을 멈출 수 없어요. 제 책도 그런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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