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썩은 부분 찌르는…있어서는 안 될 사회악” ‘다크 웹툰’ 인기,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8일 16시 11분


“법은 구멍이 나 있다. 내가 그 구멍을 메운다. 널 풀어준 법을 원망해라.”

우수한 성적, 온화한 성격, 뛰어난 체력까지 갖춰 동료의 신뢰를 독차지한 경찰대생 김지용. 그는 어린 시절 흉악범에게 어머니를 잃었다. 경찰대에 입학한 뒤 스스로 자경단을 자처하며 법이 제재하지 못하는 범죄자를 찾아가 사적으로 복수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과 범죄자들은 조두순 사건, 아우디 음주 역주행 사건 등 실제 뉴스를 떠올리게 할 만큼 거의 각색하지 않았다. 웹툰 ‘비질란테(vigilante)’는 가상의 캐릭터를 통해 사회 부조리를 고발한다.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 고발적 메시지를 담은 ‘다크 웹툰’이 인기를 끌고 있다. 법의 한계, 성폭력, 가정폭력 등 소재도 다양하다. 웹툰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않았던 피해자들과 다양한 사회 주체의 목소리가 조명되면서 독자들은 등장인물의 상처와 아픔에 공감하고 있다.

3월 정식 연재를 시작한 웹툰 ‘27-10’이 대표적이다. 제목인 ‘27-10’은 열 살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성폭력을 스물일곱 살이 되어 말한다는 의미로, 가정 내 성폭력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꺼냈다. 성인이 된 주인공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 심리상담을 받을 정도로 변화해 자기의 이야기를 담담히 털어놓는다. 작가 AJS는 “시작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서 어쩌면 영원히 못할 것만 같던 이야기. 그녀가 지나온 시간의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4월 정식 연재를 시작한 ‘땅 보고 걷는 아이’는 가정 폭력과 환영받지 못한 임신, 출산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주인공은 언뜻 보기엔 평범한 10대 소녀지만 이따금씩 어린 시절의 끔찍한 폭행 트라우마로 몸서리친다. 친부모로부터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언어폭력과 폭행을 당하며 자랐기 때문이다. 남아선호로 인한 낙태 문제와 가정폭력의 구조적 문제를 짚었다.

독자들은 “사회의 썩은 부분을 대놓고 찌르는 웹툰” “묵직하고 가슴이 아프다”며 깊이 공감하면서도 “있어서는 안 될 사회악”이라며 분노를 표하고 있다. 다크 웹툰의 댓글창은 작품 속 사례와 비슷한 본인의 피해를 토로하거나 아픈 현실에 분노하는 독자 의견으로 가득 찬다. 소방관의 이야기를 다룬 웹툰 ‘1초’에는 작품보다도 더 열악한 소방관의 처우를 꼬집는 현직 소방관들의 의견도 올라왔다. 독자들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작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임신한 10대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틴맘’에 대해서는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으로 겪게 될 차별과 고민을 지나치게 가볍게 다뤘다는 지적이 나왔다. 독자들은 임신을 한 여학생이 자신의 삶을 염려하기보다 남자친구에게 차일까봐 고민하고 여성 혼자 임신을 책임지는 장면 등이 문제라며 연재 중단을 요구했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교수(만화평론가)는 “웹툰 독자가 늘고 연령층도 넓어지며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리는 등 다양한 분야로 주제가 확장되고 있다”며 “장르 특성 상 작가가 자기 고백적 서사로 아픈 경험과 트라우마를 털어놓고 치유도 받을 수 있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여정 네이버웹툰 리더는 “사회 내 여러 주체의 목소리가 주목 받는 만큼 더욱 다양한 소재를 다룬 작품을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김기윤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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