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사는 싱글 샐러리맨과 외식 횟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하루에 두 끼 안팎을 외식으로 해결하는 직장인은 한 달에 40∼50번 이상의 끼니를 집 밖에서 먹게 된다. 이때 압도적으로 많은 외식 메뉴는 한식 단품이었다. 된장찌개, 비빔밥, 백반 등 한국인이라면 뻔히 아는 메뉴가 유독 많다. 밥은 선택의 여지없이 공깃밥! 스테인리스 공기에 담긴 밥은 온장고에서 대기하다가 찌개나 탕의 파트너로 가게 된다. 식당에서 주어진 선택지는 탕이나 전골 같은 메인 요리들에 국한돼 밥에 대한 선택의 권리는 다소 등한시돼 왔다. 하지만 도시의 젊은 샐러리맨이 점점 나이를 먹고 외식의 권태기에 들어서면서 더 맛있는 상차림의 정체는 반찬이나 독특한 국물이 아니라 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중에서 쌀을 사려고 보니 가격 차가 제법 난다. 금 진액을 물에 타서 못자리에 뿌려 만든 럭셔리 금쌀부터 비축미나 수입 혼합미 등 저렴한 쌀까지 다양하다. 학창시절 가정 시간에 배운 좋은 쌀의 선별 기준은 낟알이 통통하고 광택이 나야 된다고 했는데, 요즘같이 농법이 발달된 시대에는 웬만한 쌀이 육안으로는 다 좋아 보이는 상품(上品)처럼 보인다.
유기농법 재배로 잘 알려진 보성의 우리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35년 이상 유기 농사를 짓는 노하우가 무언가 봤더니 산나물, 유기농 채소, 열매 등 90가지 이상의 재료를 넣어 발효시킨 백초액(百草液)을 농약 대신 벼에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정성껏 손수 만든 장으로 맛을 낸 엄마의 밥상을 벼에게 차려주는 듯했다. 벼를 생명체로 인식했다는 선대(고 강대인)의 이야기까지 보태니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과연 이로써 수익을 잘 내고 있을까 우려가 앞섰다. 하지만 맛있는 밥심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소비자가 생각보다 많아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소비하는 구매 고객층이 탄탄하게 형성돼 있었다.
특색 있는 반찬 구성보다 밥을 먼저 생각하는 식당이 더 많아지길 바라 본다. 어찌 보면 한국 쌀밥의 미래는 주부의 지킴보다 식당 주인의 소신에 더 크게 달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미여울은 7명의 여성 농업인이 건강한 밥상을 추구하며 공동 운영하고 있는 농가맛집이다. 당진해나루쌀로 지은 솥밥 위에는 늦가을 소금과 고추씨로 담근 꺼먹지가 올라가 있다.
미학(米學)상차림은 한자 그대로 쌀에 집착하고 있다. 연천의 백학쌀을 그날그날 도정해 흰쌀 솥밥을 낸다. 생선구이, 젓갈 등 반찬도 정갈하다. 수라선은 잘 지은 무쇠솥밥 위에 전복장 또는 꽃게장이 올라가 호사스러운 맛난 밥으로 한 끼를 완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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