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석(48)처럼 ‘연기 변신’이란 말이 무색한 배우가 또 있을까. 그는 어떤 역할도 본인 이미지 그대로 연기한다. 15일 개봉한 ‘악인전’의 제우스파 조직 보스 장동수 역시 그에겐 딱 맞는 옷이다.
등장부터 동수는 사람이 든 샌드백을 향해 무자비한 펀치를 날린다. 20인치 팔뚝에서 나오는 괴력으로 이빨도 맨손으로 뽑아버린다. ‘비스티보이즈’(2008년)에서 재현(하정우)의 손가락을 몽키스패너로 부숴버리고, ‘이웃사람’(2012년)에서 사이코패스 승혁(김성균)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그가 충무로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때 그 모습이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9일 그를 만났다. 우락부락한 외모에서 나오는 섬세함(?)으로 ‘마블리’ ‘마요미’로 불리는 그이지만, ‘악인전’에선 확실히 웃음기를 뺐다. 동수는 자신을 공격한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해 ‘미친개’로 불리는 형사 정태석(김무열)과 손을 잡는다. 무게감을 주기 위해 평소보다 대사도 두 배가량 느리게 읊었다. 살벌한 캐릭터를 강조하려고 이원태 감독에게 샌드백 치는 장면을 제안했다.
‘비스티보이즈’, ‘감기’(2013년) 이후 악역 연기는 오랜만이다. 그의 장기인 애드리브도 이번엔 절제했다. “나 아트박스 사장인데” “나 싱글이야” 등 ‘베테랑’(2015년)과 ‘범죄도시’(2017년)의 주옥같은 대사들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더 큰 악당을 잡기 위해 악한 형사와 조직폭력배가 공조하잖아요. 연기하면서 개그 본능을 억누르느라 힘들었어요.”
‘마동석 영화는 다 똑같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배우 브랜드가 있다는 것”이라며 개의치 않는다. 2년간 영화 9편을 찍으면서 하나의 장르가 돼버린 ‘마동석시네마틱유니버스(일명 MCU)’라는 별명도 자랑거리가 됐다.
“이미지 소비에 대한 걱정은 없어요. 어차피 모든 배우가 자기 몸에서 나오는 연기를 하잖아요. 대니얼 데이루이스처럼 과작(寡作)을 하며 매번 색다른 캐릭터를 선보이는 배우도 있는 거고요. 쉰 살이 다 돼가는데 주연을 맡은 지 2년밖에 안 됐어요. 열심히 해야죠.”
그간 다져온 이미지 덕분에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 신작 ‘더 이터널스’의 캐스팅 제의도 받았다. 칸 영화제에 초청받은 ‘부산행’(2016년)이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는 “마블 영화를 찍게 된다면 쫄쫄이 의상을 입어야 할 수도 있는데 배가 너무 많이 나와 걱정”이라며 웃었다.
주연 배우로 거듭나기까지 2000년대 긴 무명시절도 ‘헝그리 정신’으로 버텼다. 거친 맨몸 액션으로 촬영 현장을 뒹굴면서 기관지염을 달고 산다. 전력질주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면은 대역을 써야 할 정도로 무릎 상태도 악화됐다. 설거지, 건설현장 막노동, 이종격투기 트레이너 등 18세부터 겪은 미국 이민생활이 그에게 “힘든 일도 이겨내는 자양분”이 됐다.
14일(현지 시간) 열리는 칸 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 초청된 ‘악인전’은 실베스터 스탤론의 빌보아픽처스가 리메이크 제작에 나서면서 겹경사를 누리게 됐다. 중학교 때 ‘록키’(1976년)를 보며 배우의 꿈을 키워왔기에, 어쩌면 소원이 성취된 셈이다. 스탤론도 이번 영화제에 참석해 ‘람보’(1982년) 복원판 특별 상영회를 가질 예정이어서 그와의 첫 대면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칸에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남성은 보타이를 매야 한다는 규정이 있던데 목이 짧아 걱정이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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