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 왕실의 연회 장소였던 경북 경주시의 동궁과 월지(안압지). 1970년대 첫 삽을 뜬 후 현재까지도 발굴 조사가 진행 중이다. 2014년 이곳에서 깊이가 7m에 이르는 통일신라 때의 우물이 발견됐다. 문제는 폭이 1.2∼1.4m에 불과했다. 체구가 작은 여성이어야 겨우 내부 조사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이때 발굴단원이던 장은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로프로 몸을 감고 깜깜한 우물에 홀로 들어갔다. 1000년의 세월을 견딘 문화유산이 빛을 보게 된 순간이다.
이 책은 집요하면서도 역동적인 문화재 발굴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동아일보 기자인 저자는 문화재 담당으로 활동할 당시 취재한 경험을 살려 국내외 주요 유적지 20곳에서 활약한 고고학자 24명의 이야기를 되살려냈다.
박물관 속 빛나는 유물들은 원래부터 아름답다고 여겨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흙 속의 진주 찾기처럼 한 땀 한 땀 흘려내는 고고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세공돼야만 그 진가가 드러날 수 있다고 책은 강조한다. 2009년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정비 과정에서 1370년 만에 발견된 황금빛의 사리장엄구를 보자. 당시 연구진은 지름 1mm의 미세한 금 구슬을 핀셋 대신 양면 접착테이프를 붙인 막대기로 건져 올렸고, 섬유류는 대나무 칼로 조심스럽게 떼어내는 등 꼬박 이틀 밤낮을 지새운 끝에 유물을 수습할 수 있었다.
기존 역사 해석을 뒤집는 발굴 현장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절로 쾌감이 느껴진다. 1978년 경기 연천군 전곡리에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되면서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만 이 도끼가 존재한다는 기존의 ‘모비우스의 학설’을 무너뜨렸다. 1976년 경기 여주시 흔암리 발굴지에서 발견된 기원전 10세기 탄화미는 일본 열도에서 한반도로 벼농사가 전파됐다는 일본의 학설을 뒤집는 쾌거였다.
빛나는 업적뿐 아니라 속도와 성과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아쉬운 결과를 낳은 발굴 현장도 균형 있게 소개한다. 또 통설과 대립되는 학설도 함께 다뤄 읽는 깊이를 더한다. 영화 인디아나존스의 무대를 한반도로 옮겨 놓은 듯한 흥미로움을 선사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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