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저장하는 가장 귀한 것은 금붙이도, 명화나 도자기도 아니다. 그것은 기억이며, 이 소중한 보물은 ‘나’를 구성하는 토대이기도 하다. 저자는 ‘기억’에 관해 신경심리학적으로 알려진 지식을 낱낱이 다룬다.
뇌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짐작하겠지만 이 책이 말하는 ‘해마(hippocampus)’는 바다가 아니라 대뇌 속에 있다. 1564년 해부학 교실에서 이 부위를 처음 발견한 이탈리아 의사가 바닷속 해마를 닮은 모습에 착안해 이름을 붙였다.
해마에 대한 관심을 폭발시킨 것은 1953년 ‘H.M 씨’라고만 알려진 헨리 몰레이슨의 수술 이었다. 의사는 그의 뇌전증을 치료하고자 몰레이슨의 해마를 완전히 제거했다. 이후 그는 3년 이내 일어난 모든 일을 기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방금 일어난 일도 잊어버렸다. 조금 전 무엇을 먹었는지도, 자신의 나이도 몰랐고 화장실에 가는 길도 매번 알려주어야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억을 저장하는 창고가 해마일까. 3년 동안 기억을 여기 넣어두었다가 다른 큰 창고로 옮겨두는 것일까. 어느 정도는 맞다. 해마의 역할은 기억이 ‘성숙해져서’ 대뇌피질에 고착될 때까지 붙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해마의 역할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뇌 곳곳에 작은 조각으로 저장된다. 이 조각들을 꺼내어 기억으로 조립하려면 해마가 일해야 한다. 해마를 제거한 몰레이슨의 경우 수술 3년 이전의 일을 기억할 수는 있었지만 소리, 냄새, 분위기 등이 통합된 생생한 경험으로 기억해 낼 수 없었다.
두 저자는 노르웨이의 신경심리학자와 저널리스트 자매다. 한국인에게 세월호라는 트라우마가 있다면 노르웨이인에게는 2011년 7월 22일이라는 트라우마가 있다. 여름캠프에 간 청년 69명을 테러리스트 한 사람이 학살한 우퇴위아섬 사건이다. 비극적인 일이지만 뇌 연구에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이 사건을 겪은 여러 사람이 사실과 다른 ‘가짜 기억’을 갖게 되었다. 쌍둥이들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었다. 그 이유를 파고드는 시선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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