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지난 4월 18일부터 5월 19일까지 열린 ‘한국의 정원展-소쇄원, 낯설게 산책하기’ 특별전시회는 관람객에게 신선한 경험을 선사했다.
전시는 외국 정원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는 한국의 전통 정원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됐다. 영상예술, 설치미술, 공예, 사진, 센트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활동가들이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소쇄원’을 선보였다.
무엇보다 전시장에 은근히 퍼진 ‘향기’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 전남 담양 소쇄원에 가지 않고도 계곡을 건너온 대숲 바람에 실린 상큼한 나무 향을 맡을 수 있었다.
전시의 센트(scent·향기 냄새) 디자인은 글로벌 향기 마케팅 기업 ㈜아이센트의 센트 디렉터 최아름 대표가 맡았다.
최 대표는 이전에도 아트 갤러리나 패션쇼, 박람회 공간에서 향기 작업을 여러 번 진행했다. 이번 전시는 향기가 뒤에 숨어서 전시 공간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조력자의 모습이 아닌 ‘센트 디자인’이라는 예술작품으로서 대중에게 직접 다가섰다는 것이 달랐다.
향기가 더 많이 예술적으로 이해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시에 참여했다는 최 대표는 27일 전시의 센트 디자인 방향에 관해 자세히 들려줬다.
그는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대나무숲을 거닐고 있는 듯한 설치 미술이 시선을 사로잡으며 동시에 코끝으로는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청명하고 싱그러운 에너지를 선사하는 대나무 향기를 느낄 수 있어요. 자연과 하나가 된 맑고 깨끗한 소쇄원의 의미를 담고 있는 향기는 점차 베르가못과 라임 그리고 아름다운 릴리와 재스민의 하모니가 어우러져 마치 향기로운 정원에 온 듯한 착각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의도는 적중했다. 작품을 감상한 관람객 다수가 “향기가 가장 인상적”이라는 소감을 남겼다. “전시장 입구의 신선한 향기 덕분에 진짜 정원에서 산책하는 기분이 들어 신기했다”, “시간이 지나도 전시장의 향기는 계속해서 떠올랐다” 등 향기에 관한 관람 소감이 온라인에 속속 올라왔다. 일부는 디퓨저나 캔들을 전시장에서 판매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전했다.
최 대표는 “전시를 위해 특별히 디자인한 향기인 만큼 현장에서의 반응이 좋아서 만족스러워요. 공간 향기에서 그치지 않고 확장해 가시적인 향기 제품으로 만들었으면 더욱더 좋았겠죠. 저희도 아쉬운 부분이지만 단독 전시가 아닌 만큼 많은 고려 사항이 있었어요” 라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 대부분의 뮤지엄 및 갤러리에 공간 향기가 필수적인 요소로 들어간다. 전시 주제에 따라 때로는 전시를 부각하기 위한 하나의 예술 도구로 사용되기도 해서 향기 자체가 전시의 주인공이 된 후각 아트 전시가 기획되기도 한다. 반면 한국은 아직 전시에 향기를 사용하는 것 자체를 낯설어하기 때문에 이번 전시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후각으로 느끼는 향기는 인간의 감정과 기억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물 인식에도 후각이 다른 감각과 함께 하면 더 큰 공감각적 인지 효과를 준다. 눈과 귀로만 보던 전시를 코로도 함께 느끼게 되면 감각이 서로 연관되어 관람객들은 훨씬 오랫동안 강렬하게 기억에 남게 된다. 사람들의 시각은 3개월이 지나면 대략 50%정도만 기억하게 되지만 후각은 1년 동안 약 65%의 정확도로 냄새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고 더 깊은 감정적 울림을 경험했다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향기라는 요소를 추가한 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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