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초이 소설집 ‘남주의 남자들’…온몸으로 저항하는 여자들 ‘먹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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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6월 28일 11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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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82년생 김지영’은 2016년 발간 이후 100만부를 돌파한 베스트셀러다. 한국 사회 페미니즘 운동과 담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독자들이 스스로 책을 선택하고 광고하고, 베스트셀러로 만든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페미니즘 열풍이 여전한 가운데 사회에서 고통 받는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박초이 작가의 첫 소설집 ‘남주의 남자들’(문이당)이 ‘82년생 김지영’의 계보를 이을 수 있을 지 주목된다.

표제작 ‘남주의 남자들’의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날 회사 후배가 나를 찾아온다. 손에는 내가 후배에게 보낸 결혼 청첩장이 들려 있다. 후배는 이 남자와 결혼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회사 옥상에서 자살한다. 왜 결혼하면 안 되는 건지, 왜 자살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곧 이 소설의 서사다. 이 이야기는 가면을 쓴 남자들에게 희생당한 여성의 이야기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가 가장 무서운 적이 되는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그 외에도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남성의 폭력에 희생당한 여성의 이야기를 남성 화자를 통해 표현한 ‘거짓 없이 투명한’, 산후우울증을 견디다 못해 아이를 잃고 활자중독증에 걸린 여인의 이야기 ‘흡충의 우울’, 살인을 저지르고 게임 속으로 도피하려는 십 대 소녀의 이야기 ‘율도국 살인사건’ 등이다.

또한 1980년 5월 광주의 영령들을 소환하여 애도를 표명하는 이미지 소설 ‘이름만 남은 봄날’, 미래소설이나 공상과학영화에서 나오듯이, 자동화된 미래사회의 통일된 한반도에서 벌어짐직한 토지 소유 문제를 천착한 세태 풍자 소설 ‘강제퇴거명령서 -2039년 평성’도 있다.

소설집 ‘남주의 남자들’에서 여자들은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온몸으로 주어진 상황에 맞서 저항하려 한다. 작가 박초이는 이 여자들이 왜 ‘살인’을 저지르고 도주하려 하는가에 주목한다. 그래야만 되는 까닭을 찾아 숨겨진 원죄를 밝혀내는 것. 그리하여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힘을 쏟는다.

‘남주의 남자들’은 쉽고 재미있게 읽히되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이다. 문장도 미학적이고 담고 있는 메시지도 만만치 않다. 독자들은 거짓된 진실을 믿고 소설을 읽다 어느 순간 뭔가 잘 못 됐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그 때 쯤 진실이 밝혀진다.

한편 박초이는 2016년 계간 ‘문학나무’ 신인문학상에 단편 ‘경계의 원칙’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박해식 동아닷컴 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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