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배우의 티켓 파워가 큰 흥행 요인으로 꼽히는 게 한국 뮤지컬계의 현실이다. 하지만 주연 이상으로 관객의 눈길을 잡아끄는 무대 위 ‘신 스틸러’가 있다. 이들은 극의 중심을 잡으며 객석의 분위기 전환과 웃음, 눈물까지 담당한다.
최근 무대를 활발히 누비는 ‘신 스틸러’ 임기홍(44) 원종환(40) 육현욱(39)을 만났다. 데뷔 후 평균 15년 넘게 무대에 선 이들은 “주연과 작품이 빛날 수 있도록 절대 튀지 않아야 하는 게 신 스틸러의 미덕”이라고 입을 모았다. 셋은 서울 대학로 흥행작 ‘김종욱 찾기’에서 1인 23역을 소화하는 ‘멀티맨’ 배역을 맡은 공통점이 있다.
현재 뮤지컬 ‘그리스’에서 10대들의 우상인 라디오DJ ‘빈스 폰테인’으로 활약하는 임기홍은 “캐릭터의 자유분방함과 재미를 표현하면서도 전체 분위기에 어긋나지 않도록 연기하고 있다. 장면을 훔치고 도움을 준다는 ‘신 스틸러’의 뜻처럼 나보다는 작품을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2001년부터 ‘명성황후’ ‘페임’ ‘브로드웨이 42번가’ 등을 거친 그는 영화와 방송에서도 활약 중이다.
최근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에서 악인 ‘토니 보일’을 연기한 원종환은 “튀게 보이려고만 한다면 관객은 극에 몰입하기 어렵기에 절제미를 갖추려 노력한다. 연습 때 다양한 화이팅 구호를 주도적으로 만드는 것도 저희 몫”이라며 웃었다. ‘광화문 연가’에서 ‘그대들’ 역으로 출연한 육현욱은 “장면의 목적이 웃음을 주거나 돋보여도 되는 때라면 마음껏 연기한다”고 했다.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지만 주연 욕심이 날 법도 하다. 때론 무대에 서는 횟수가 주연보다 많아도 캐스팅 달력이 주요 배역 위주로만 소개되는 현실에 대해 묻자 이들은 “아쉬움은 전혀 없다. 무대 위에서 작은 배역은 절대 없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물론 사람인지라 욕심이 날 때도 있죠. 다만 어떤 배역이든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생활리듬을 공연에 맞추고 스스로 관리하는 건 누구든 똑같거든요.”(임기홍)
수많은 배역을 거친 세 배우가 ‘신 스틸러’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이 역할은 너 아니면 못 하겠다’라는 칭찬을 들을 때죠.”(육현욱)
“공연이 끝나고 ‘배우님 밖에 안 보였어요’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월급통장에 ‘신스틸러 원종환’이라고 찍힐 때도 좋죠.”(원종환)
“재미있는 장면에서 웃고, 슬픈 장면에서 우는 관객의 즉각적 반응을 볼 때 가장 짜릿합니다.”(임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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