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9일 화요일 맑음. 칵테일 사랑. #321 Rupert Holmes ‘Escape(The Piña Colada Song)’(1979년)
어젯밤, 음악가 B가 임시 바텐더로 변신한 바에 갔다. 독특한 풍미의 칵테일을 몇 잔 들이켜니 열대의 바닷가에라도 온 듯했다. 어차피 지하였으니 바깥 풍경도 안 보이고 그저 내가 상상하기 나름이었다.
사계절이 너무도 뚜렷한 한반도에 무더위가 찾아왔다. 시원한 칵테일에 관한 노래들이 떠오른다.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은 사뿐사뿐한 리듬, 흥겨운 분위기와 달리 꽤 우울한 내용이다. ‘한 편의 시가 있는 전시회장도 가고’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속삭여줄 연인을 그리지만 현실은 이렇다. ‘창밖에는 우울한 비가 내리고 있어/내 마음도 그 비 따라 우울해지네.’
톰 크루즈 주연 영화 ‘칵테일’에는 비치 보이스의 ‘Kokomo’가 흐른다. 플로리다 군도에 위치한, 노래 속에만 존재하는 가상 낙원이다. 스틸드럼, 아코디언, 트라이앵글이 자아내는 이국적 리듬을 뚫고 색소폰 연주가 치솟는 순간이 압권이다.
이글스의 ‘Tequila Sunrise’는 유명한 칵테일인 테킬라 선라이즈를 연상시키지만 사실 칵테일에 관한 노래는 아니다. 실연의 슬픔에 독주인 테킬라를 스트레이트로 해뜰 때까지 마시는 사내에 관한 목가적 비가다.
미국 싱어송라이터 루퍼트 홈스의 ‘Escape(The Piña Colada Song)’ 가사는 말미에 반전을 품은 엽편소설쯤 된다. 권태기 부부의 괴상한 외도 이야기. 주인공에게 아내는 ‘하도 많이 들어 닳아버린 노래 녹음’ 같다. 신문에 나온 묘한 구인광고에 혹한다.
‘피냐콜라다를 좋아한다면/갑자기 맞는 비를 좋아하며/요가엔 별로 관심 없고/적당히 똑똑하며/깊은 밤 사랑을 나누는 것을 즐긴다면’ 답장을 보내라, 같이 도망가자는 내용.
밀회의 날, 주인공 앞에 나타난 여인을 그는 단박에 알아본다. 바로 아내다. 두 사람은 서로 같은 취향을 갖고 있었다. 새삼 확인한다. ‘피냐콜라다를 좋아하고/갑자기 맞는 비를 좋아하’는 둘만의 유쾌한 탈주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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