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만큼 공평한 게 있을까. 하루 24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다. 다만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일본 출신의 개념미술가 온 가와라는 자신의 하루를 그림으로 기록했다. 그런데 그의 그림에는 어떤 이미지도 없이 날짜만 적혀있다. 이게 왜 예술일까 싶지만 그는 이 ‘날짜 그림’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65년 뉴욕에 정착한 그는 1966년 1월4일 ‘오늘’ 연작을 시작했다. 캔버스 위에 제작 당일의 날짜를 쓴 게 전부이지만, 보기와 달리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우선 네 겹으로 고르게 바탕칠을 한 다음, 흰 물감으로 일곱 번까지 날짜를 칠했다. 8개의 규격화된 캔버스 크기, 바탕은 단색, 하루 최대 세 점 등 작품은 작가가 정한 규칙에 따라 제작됐고, 당일 자정까지 완성하지 못한 그림은 폐기됐다. 각각의 그림 뒷면과 보관 상자에는 그날의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서 붙였다. 그러니까 그가 기록한 날짜들은 평범한 하루일 수도 있지만 베트남 전쟁 종식이나 9·11 테러, 혹은 인류 역사의 큰 사건이 일어난 날이기도 했다.
여행광이었던 그는 편의상 가로 25㎝ 정도의 작은 그림을 많이 그렸지만 1969년에는 예외적으로 가로 2m가 넘는 대형 그림 세 점을 완성했다. 인류가 처음으로 달에 착륙한 날을 기념한 작품들이다. 모든 미술적 표현이나 개인적 감정을 배제하고 오직 규칙에 따라 작업해온 그에게도 이 역사적인 시기는 의미가 남달랐던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시간은 성실히 기록했지만 자신이 기록되는 것은 극도로 꺼렸다. 이력 공개뿐 아니라 인터뷰나 사진도 허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이도 자신이 살아온 하루의 날수로 계산해 표시했다. 태어나 2만9771일을 살았던 그는 3000점 가까운 ‘오늘’ 연작을 남긴 후 2014년 7월 세상을 떠났다. 약 50년간 지속된 ‘오늘’ 그림은 그의 죽음으로 비로소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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