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운동가, 평화운동가,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992년부터 올해 1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90세가 넘는 고령에도 세계를 돌며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고 그 누구보다 끝까지 싸운 불굴의 투사. 세상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한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
영화 ‘김복동’은 운동가로서 김복동 할머니(1926~2019)의 일대기를 다룬다.김복동은 위안부 피해자로서의 인권 회복을 위한 운동뿐 아니라 여성인권운동가로서도 활약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할머니는 본인이 상처 입은 존재지만, 늘 상처 입은 다른 피해자들에게 따뜻한 말씀을 전했다. ‘김복동 희망’이라는 단체를 만들 계획이다. 할머니가 재일 조선학교에 지원을 했었는데, 끝까지 못하고 가셨다. 내년에는 우간다 내전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생존자들이 모여사는 동네인 ‘글루’ 지역에 추모관, 역사관, 자활센터, 농경지, 게스트하우스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김복동센터’를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출자 송원근 감독은 “김복동 할머니의 삶은 단순하게 피해자로만 살다 간 삶이 아니다. 피해자를 넘어서 인권운동, 평화운동을 하면서 본인을 버리다시피하며 싸웠다. 그래서 할머니 얘기를 꼭 해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관객에게 전달코자 하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밝혔다. “영화의 메시지는 뒤쪽에 나온다. 김복동 할머니의 모습은 현재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닥친 문제다. 그럼 ‘이제 과연 누가 나서야 하나’를 생각했을 때, 결국에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다. 국민들이 사실을 명확히 알고, 명확하게 안 걸 바탕으로 일본이 얘기하는 게 거짓이란 점을 개개인이 반박할 수 있는 수준이 되기를 바란다. 그제서야 일본도 변화할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
영화의 촬영은 많은 부분 미디어몽구 김정환이 담당했다. 그와 김복동의 인연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모금을 통해 김복동에게 승합차를 선물한 것으로 화제가 됐다.
김정환은 “2011년도에 할머니가 타고 다니는 승합차가 고장이 났다는 기사를 우연히 봤다.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모 자동차 회사에 공문을 보내 협찬을 요청했는데, 그곳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그걸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수요시위를 알게 됐고, 관심을 가지고 계속 보게 됐다. 그리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우리가 모금을 통해서 할머니에게 선물을 하자는 생각을 했다. 반응이 너무 폭발적이라 1주 만에 풀옵션 차를 살 수 있을만큼 모았다. 많은 이들이 ‘트랜스포머’라 할 정도로 기능을 다 알 수도 없는 풀옵션 승합차를 선물해줬다”고 했다. 그때 시작된 김복동과 김정환과의 관계는 친할머니와 손자에 버금가는 관계로 발전했다. 김정환은 “할머니가 나를 손주로 받아줬다.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병상 장면이다.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본인은 절대 죽기 싫다고 말씀했다. 그 말씀을 들을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 지금 이 영화를 보면서도 할머니가 진짜 많이 보고 싶다. 할머니가 다음 생에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냐는 말에 ‘엄마가 되고 싶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 행복하게’라고 답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도 눈물을 훔치며 “할머니가 나에게 가끔 이렇게 말했다. ‘몽구한테 할 말이 있다. 몽구야 나는 잘 있다. 너는 잘 있나. 여기 있는 거 대표(윤미향)가 올릴 테니 (SNS에) 올려달라.’ 그러면 몽구씨가 트위터에 할머니 모습을 올려줬다. 할머니가 해외 이동 시 더 편하게 비즈니스 좌석에서 갈 수 있도록 모금도 해줬다”고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자신이 느낀 상실감을 말하며 다시 울먹였다. “1월28일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평화의 우리집’ 소장님, 나, 정대협 활동가들 모두 한동안 할머니 방에서 지냈다. 거길 떠나는 자체가 우리들에게 되게 어려웠다. 나 같은 경우는 외박을 안 하는데 할머니를 보내고 나서는 몇 박 며칠을 할머니 방에서 집에도 가지 않고 지냈다. 우리는 식구처럼 할머니와 28년을 살았다. 그냥 울음이 터졌다. 손영미 소장을 부둥켜 안고 울기도 했다.” 윤 대표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정부에 대한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전문적인 아카이브가 필요하다는 걸 문재인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미래 세대들에게 이런 걸 유산으로 남겨야 하는데,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나. 그런 건 정부의 재원이 필요한 사항이다. 앞으로 큰 숙제로 가지고 대응해 나가겠다.”
내레이터로 배우 한지민(37)이 참여했다. 송 감독은 “한지민씨가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기억의 터’ 2주년 행사에 참여했다. 그 모습을 봤고, 그걸 계기로 전화를 한 번 했다. 그리고 기획 이야기를 전달했다. 김복동 할머니에 대한 영화를 하게 됐고, 내레이션 참여 의사를 여쭤봤다. 흔쾌히 참여해 줬다”고 했다.
영화가 개봉되고 난 후의 바람에 대해서 미디어몽구 김정환은 “우리 국민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좋겠다. 우리 각자가 이 역사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일본 시민들도 봤으면 좋겠다. 또한 불어로, 스페인어로, 영어로 번역돼 우간다, 콩고 등 김복동의 ‘나비기금’이 날아간 여성들이 이 영화를 보고 힘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송 감독은 “ 할머니는 모두가 울 때 침착하고 담담하게 상황을 보는 분이었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그렇게 다가갔으면 좋겠다. 열 받으며 보는 게 아니라,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마음 속에 꾹꾹 눌러 담았으면 좋겠다. 그 힘을 가지고 앞으로 일어나는 일들에 좀 더 차분하게 대응했으면 한다. 이 영화가 변화의 시발점이 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표는 “1926년에 태어나 2019년 숨을 거두기까지 이렇게 치열하게 살았던 여성이 있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분의 소망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는 모든 분들이 ‘내가 김복동이다’라는 결단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게 일본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영화 초반 김복동이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손을 씻는 장면이 나온다. 송 감독은 “할머니가 어쨌든 씻고 싶었던 과거의 생각들 같은 부분들이 행동으로 표현된 게 아닌가 생각했다”고 한다.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면서도, 타인의 상처는 보듬고자 한 김복동. 영화 ‘김복동’은 다음달 8일 개봉한다. 101분, 12세이상 관람가
댓글 0